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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팬픽

해 뜨는 나라의 천마

 

해가 번쩍이며 한 줄기 빛을 타고 하늘에서 천마가 내려왔다.

 

태자님! 이쪽입니다!”

 

피해 규모는 어떤가?”

 

내가 들은 말의 내용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딘가에서 나타난 동물 한 마리가 날뛰며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이 너무 강하여 우리 신자들이 전부 덤벼도 이길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신자들은 각종 도술을 몸에 익힌,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몸에 지닌 자들이었다. 그런 신자들을 혼자서 압도하는 힘이라니. 도대체 어떤 동물이 그만한 힘을 가졌단 말인가.

 

쓰러진 신자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태자님 없이 저희끼리는 안됩니다.”

 

후토는 나에게 길을 안내하며 재촉하듯이 앞을 달려갔다. 나는 묵묵히 그 뒤를 따라 동물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수십 분간 나무 사이를 헤집고 달려 이윽고 넓은 평야에 도달하고 나서야 나는 신자들과 싸우고 있다는 그 동물이라는 녀석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 허리에서부터 아래로 늘어진 기다란 꼬리. 그리고 커다란 검은색의 날개. 동물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 불리는 천마였다. 싸움의 광경을 보자마자 신자들의 힘만으로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 난폭한 몸짓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주먹으로 휘두르고 발길질을 날리는 모습은 도저히 보통의 힘으로는 억누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미 신자들과의 싸움 탓에 몸에는 상처가 상당히 있었지만 천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날뛰었고, 신자들의 나약한 육신은 그 무자비한 공격 아래 바람 앞의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또 다른 신자가 그 공격에 나가떨어지기 전, 나는 주저 없이 허리춤의 칼을 뽑아 달려들었다.

 

일섬. 그 날뛰는 거구를 향해 검을 크게 휘둘렀다. 천마는 곧바로 몸을 뒤로 젖혀 피했기에 나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다시 한번, 천마가 몸을 일으키기 전에 검을 세워 찔렀지만 천마가 재빨리 몸을 돌린 탓에 스치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반격이 날아왔다. 천마는 그대로 몸을 더 돌려 등에 달린 날개로 나를 힘껏 후려쳤다. 막아낸 오른팔이 얼얼하며 아프긴 했지만, 덕분에 그 공격 한 번에 나가떨어지진 않았다. 검은 날개가 시야에서 걷히고, 나와 천마의 눈이 마주쳤다.

 

강한 녀석이군. 너희들의 대장인가?”

 

천마가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표정에 넋을 잃었다면 위험할 뻔했다. 천마는 곧바로 다리를 위로 쭉 뻗어 자신의 머리 위까지 높이 쳐들었고, 내 키의 두 배는 될 정도로 높이 뻗은 다리를 그대로 내게 내리찍었다.

재빨리 바닥에 몸을 던져 흙먼지를 뒤집어쓸 정도로 구르지 않았다면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다.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리며 흔들렸고, 천마가 발을 들자 그 자리엔 바닥이 갈라져 금이 간 것이 보였다. 제대로 맞았다면 절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일어나 몸을 바로잡고 천마를 향한 공격을 이어갔다.

싸움은 길어져 나와 신자들은 천마를 서서히 압박했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날뛰던 천마의 움직임은 점차 사그라들어 갔다. 몸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천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러던 도중 신자 한 명의 창이 그녀의 몸을 제법 강하게 찔렀다. 천마는 미세한 신음을 내며 자세가 무너져 내렸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검을 잡고 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천마는 뒤늦게 자세를 잡고 나를 향해 주먹을 날렸지만, 준비된 공격이 아닌 느린 주먹은 가볍게 몸을 숙여 피할 수 있었다. 움직임이 느려지고 한쪽 팔을 길게 뻗은 그때가 빈틈이었다. 나는 몸을 숙인 그대로 천마에 품에 파고들었다. 내 두 손에 움켜쥔 검을 날카롭게 세웠다. 칼끝이 번뜩이고 공기를 가르며 천마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칼끝은 그녀의 목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

 

천마는 분한 듯한 얼굴로 자신의 목 앞에 날카롭게 선 칼끝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미 승부는 결정이 났었다. 그 난폭한 움직임이 잠시 멈춘 사이 신자들의 검과 창, 그리고 화살의 촉이 그녀의 몸을 둘러쌌다. 천마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천마의 목에 들이댄 검을 더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움직이지 마라. 그리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라.”

 

천마는 모가지를 뻣뻣이 펴고 양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더 이상 저항의 의지는 없어 보였다.

 

우릴 공격한 이유가 뭐지?”

 

내 질문을 들은 천마는 얼굴에 희미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인간들에게 내린 선전포고였다. 너희 인간들과 전쟁을 벌일 생각이었지. 그랬다만...”

 

그랬다만?”

 

보는 대로지. 장기전이 될 줄 알았는데 하루 만에 끝날 줄이야. 내가 졌다. 죽이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천마는 당연하다는 듯 태평한 말투로 말했다. 죽이든지 말든지라니.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건가.

그러나 그 말이 허세라는 생각은 쥐꼬리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 당당한 자세와 눈빛은 정말 지금 당장 목을 내리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죽을 모습이었다. 물론,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내가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는 거냐.”

 

그래. 네가 이겼으니 네 마음대로다.”

 

나는 천마의 목을 겨눴던 검을 거둬들였다. 검은 그대로 검집 안에 들어가 천마는 언제든지 다시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천마가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냐?”

 

내가 이겼으니 내 마음대로 아닌가. 죽이진 않겠다. 대신 명령을 하나 내릴 테니, 그에 따라라.”

 

나의 손짓에 신자들은 천마를 향한 무기를 거둬들이며 물러났다. 천마는 다시 마음껏 날뛸 수 있었음에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천마의 눈을 마주 보았다. 나는 그 눈을 보며 명령을 내렸고,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잘 해결되었다.

나는 죽일 수도 있었던 목숨을 살려주었고, 오히려 천마에게 좋은 조건을 내걸었다. 이걸로 천마는 인간에게 호감을 갖고 은혜를 베풀어준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랬으면 좋으련만...

 

 

 

 

망할 녀석! 이렇게 시시한 곳인 줄 알았다면 그냥 죽는 쪽이 나았을 텐데.”

 

아무래도 불같은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었다.

 

말을 더 곱게 할 순 없나?”

 

네 명령 하나만 들으면 된다며. 이제 와서 말투까지 바꾸라고?”

 

천마는 우리에게서 치료를 받았다. 천마의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자잘한 출혈이 많았기에 먼저 우리가 사는 곳으로 데려와 상처를 치료해주기로 했다. 천마는 내 명령에 그대로 따랐다. 내가 내린 명령은 나와 함께 살 것’. 상처를 치료해준 것도 모자라 여기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해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나에게 하는 말이 망할 녀석이라니.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언행이었다.

 

끌고 와서 한바탕 싸움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게 뭐냐. 이 쓸데없이 조용한 곳은 또 뭐고.”

 

내가 사는 곳이다. 앞으로 네가 살 곳이기도 하고.”

 

나는 천마를 우리가 사는 곳으로 데려왔다. 이곳은 도술을 익히고 수련을 하는 도관.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과는 달리 외진 산속에 있어서 살기 편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수행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우리는 치료를 해주면서 천마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었다. 이름이나 나이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물었고 순순히 대답해준 덕분에 알아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이 아이의 성격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최강의 동물이라 불리고 다니는 녀석이 하는 짓은 사춘기 때의 어린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난 이제 뭘 하면 되지?”

 

여기 있는 다른 신자들과 같이 지내면 된다. 사람들을 돕고 내 가르침에 따라 수행도 할 테지.”

 

가르친다고? 네가? 나를?”

 

천마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나를 노려봤다. 그 모습도 어른에게 반항하는 아이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명령은 아니다. 내 가르침에 따를지 말지는 네 자유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 뭐라도 알려주고 가야지.”

 

성급해 하지 말고 오늘은 일단 휴식을 취해라. 아직 상처도 다 낫지 않지 않았나. 밤이 늦었으니 자세한 건 내일 알려주마.”

 

나를 붙잡으려던 천마는 붕대가 칭칭 감긴 자신의 몸을 보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천마에게 이불이나 배게 등 갖가지 생활 물품들을 내밀며 말했다.

 

이 방은 앞으로 네가 쓰게 될 방이다. 여기서 생활하고, 다른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라.”

 

천마는 팔짱을 끼고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받은 물건들을 헤집어 이불을 바닥에 넓게 폈다. 아무리 강한 모습을 보여도 몸이 지친 건 어찌할 수 없던 모양이었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문틈 사이로 천마가 과격한 몸짓으로 드러누워 이불을 덮는 것이 보였다.

 

 

 

 

하루가 지나고 새벽이 밝았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일찍 잠에서 깨어나 옷을 갈아입고 하루의 시작을 준비했다.

나는 제일 먼저 천마가 쓰기로 한 방을 찾아갔다. 천마의 방 앞에 멈춰선 나는 그 문을 두드렸다. 아무 대답도 없자 역시 늦잠을 자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을 때, 방 안에 천마는 없었다.

 

이런.”

 

방심했다. 당당히 죽음을 받아들이려던 그 모습에 당연히 도망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방을 나간 지는 얼마나 됐을까. 혹시 이미 누구 하나 붙잡고 어제처럼 싸움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도관 밖으로 나온 나는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간 내가 했던 걱정들은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곧바로 천마를 발견했다. 천마는 도망가기는커녕 여기가 자기 집인 듯 아주 편하게 있었다.

우리 도관의 바로 옆에는 거대한 바위가 하나 있었다. 크기가 상당히 크고 높으며 그 모양 또한 사납도록 울퉁불퉁하여 썩 보기 좋은 외형은 아니었다. 다만 그 꼭대기는 넓고 평평하여 마치 누군가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제공해준 것만 같았다. 천마는 바로 그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떠오르는 새벽 햇살을 받으며 그 높은 곳에 앉아 있는 모습은 천마라는 이름에 맞게 장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또 어디서 찾아낸 건지, 그 옆에는 커다란 술 항아리를 두고 가장 크기가 큰 술잔으로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뭐라 해야 할까. 참 그 성격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천마가 있는 그 바위 위를 타고 올라갔다. 아니, 기어 올라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바위는 너무 가파르고 울퉁불퉁하여 도저히 두 다리만으로는 올라갈 수 없었다. 나는 마치 네 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처럼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여 바위 위를 올라갔다. 그마저도 자꾸 손이 미끄러지고 발을 헛디뎌 쉽게 올라갈 수가 없었다. 도대체 천마는 어떻게 이 험난한 바위를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걸까. 그것도 자기 몸만 한 술 항아리를 가지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천마는 바위를 기어오를 필요가 없었다. 녀석에겐 날개가 있었다.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나? 그냥 포기하지?”

 

천마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비웃는 듯한 표정은 내가 고생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 덕에 오기가 생겨 더욱 빠르게 기어 올라갔고 비교적 빨리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단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넓게 펼쳐진 정상에 마지막 한 발을 내디뎠다. 그와 반대로 천마는 무척이나 편안하게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날개가 있으면 편하겠구나. 나처럼 힘들게 기어 올라올 필요가 없으니 말이야.”

 

, 타고 난거지. 태어날 때부터 난 강했으니까.”

 

나는 지친 몸을 내려놓듯이 천마 옆에 주저앉았다. 아니, 옆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간격이 떨어진 곳에 앉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산속에 도관을 짓고 수행하며 살아온 날이 제법 길었지만, 이곳에 올라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바위 위에선 온 세상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며 그 모든 세상이 불그스름한 새벽빛 노을에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천마 역시 그 광경이 마음에 든 듯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는 데 불편함은 없었나?”

 

그럭저럭. 마구간이 아닌 것만 해도 어디냐.”

 

농담을 던지는 거 보니 낯선 환경에서의 잠자리가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았다.

 

어제는 왜 그랬던 거냐. 왜 인간들과 전쟁을 벌이려고 했던 거지?”

 

천마는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술잔으로 항아리 안의 술을 가득 퍼담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멍청하긴. 싸우는 이유라면 하나뿐 아니겠냐. 당연히 가진 것을 빼앗기 위해서지. 강자는 먹고, 약자는 먹힌다. 자연의 섭리야.”

 

그렇게 말하며 천마는 술잔을 들이켰다. 보통 독한 술이 아닌데, 한잔을 전부 비우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곤 너무 상냥하지 않았나. 싸웠던 신자들 모두 다치긴 했지만 죽거나 치명상을 입진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닌가?”

 

피라미들 따위 죽여봐야 이득 될 게 없지. 우두머리를 죽이고 밑에 녀석들을 지배하는 게 나으니까. 너 같은 우두머리 녀석을 말이야.”

 

나는 죽일 생각이었던 건가?”

 

네가 졌으면 너는 죽었을 거야. 정말로.”

 

살벌한 이야기를 하는 것 치곤 유쾌한 표정이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구별이 안 가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내가 데려왔지만, 지나치게 강하고 난폭한 이 아이를 여기서 살게 한다는 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여기서 그런 짓은 금지다. 누굴 죽인다던가, 남을 지배한다던가 그런...”

 

알아, 안다고. 인간 녀석들이 하는 말이야 늘 똑같지.”

 

천마는 투덜대듯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커다란 날개를 펴며 바위 끝자락으로 걸어갔다. 천마는 그 아래를 내려다봤다.

 

벌써 내려갈 건가? 난 지금 막 왔다만.”

 

나는 한참 전부터 와있었어. 그리고... 여기 사는 동안은 네 명령에 따라줄 테니 걱정 마라. 나는 죽거나, 약속을 지키거나. 둘 중 하나는 확실히 하니까.”

 

그리고 천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래로 몸을 날려 뛰어내렸다.

 

, 잠깐.”

 

나는 놀라 달려가며 천마가 뛰어내린 아래를 내려다봤지만 다행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늘을 나는 천마는 이 정도 높이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바위 아래를 날아다니며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땅에 가까워진 천마는 날개를 몇 번 더 펄럭이더니 그야말로 하늘에서 환수가 내려오듯 웅장하게 지상에 착지했다.

나는 그 모습에 감탄했다, 그리고 곧바로 걱정이 몰려왔다. 날개가 없는 나는 이 험한 바위를 다시 기어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천마가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지 벌써 열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그동안 별다른 사고를 치진 않았다. 문제라고 한다면 예의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데다가 갈등이 생기면 뭐든지 힘으로 해결하려는 것 정도. 그 정도는 내가 잘 말리고 신자들이 배려해준 덕분에 일이 크게 번지진 않았다. 오히려 신자들의 수련 상대가 되어주거나 무거운 것을 거뜬히 들어 옮기는 등 힘 쓰는데에 있어서는 우리에게 도움이 된 점이 더 많았다. 천마는 내 예상보다 이곳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그 키 작은 녀석. 왜 내 명령을 안 듣지?”

 

질문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키 작은 녀석이란 건 아마 후토를 말하는 건가?

 

이상해. 내가 너보다 강한데. 나를 따르는 부하는 한 명도 없어. 왜 전부 네 말만 따르지?”

 

내가 이겼던 걸로 기억한다만?”

 

이긴 건 너지만 강한 건 나지. 일대일로 한 번 더 붙어볼까?”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 무식하게 강한 아이를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아무래도 천마는 신자들이 날 따르는 이유가 그저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힘밖에 모르는 이 바보가 그렇게 그렇게 생각한 것도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직 덕목이 부족하니 그렇지. 세상은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천마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술잔을 단번에 들이켜 마셨다. 나와 천마는 오늘도 바위 정상에 앉아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올라오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 아니, 이번뿐만 아니라 매일 그랬다. 천마가 이곳에 온 후로 우리는 항상 이랬다. 천마는 언제나 날개를 이용하여 편하게 날아 올라왔고, 나는 언제나 힘겹게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 이렇게 해 뜨는 나라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너무 외진 곳이지. 오늘은 좀 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갈 거다.”

 

사람이 많은 곳?”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갈 거다. 그곳에서 할 일이 있으니까.”

 

그래? 간만에 잔소리 많은 녀석 없이 조용히 있을 수 있겠네.”

 

천마는 기분 좋다는 듯이 바닥에 몸을 눕히며 말했다.

 

너도 가야지.”

 

천마가 다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내가 왜?”

 

명령이다. 내가 언제 도관에 틀어박혀 살라고 했나. 나와 같이 살라고 했지. 나는 오늘 하루종일 밖에 돌아다닐 텐데, 너도 같이 가야 하지 않겠나.”

 

천마가 이를 악물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 망할 녀석.”

 

저러다 또 마음이 바뀌어 난동부리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천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술 항아리를 챙겨 들었다.

 

어딜 갈 건진 몰라도 갈 거면 빨리 내려와라. 기다리는 건 질색이니까.”

 

천마는 먼저 날개를 펴며 바위 밑으로 내려갔다. 나 역시 서둘러 바위를 타고 기어 내려가 준비를 서둘렀다.

 

오늘 우리가 간 곳은 도관과는 멀리 떨어진,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도술을 익히거나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 그렇기에 더욱 약한 사람들이었고 괴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병에 시달리고 있는 어린 소녀의 집이었다. 그 집의 소녀는 불치병에 걸려 몸이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누워있는 소녀의 옆에 앉아 주머니에서 가져온 약초를 꺼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걸 씹고 난 후의 소녀는 한결 나아진 표정을 지었고 나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천마는 그 모습을 보며 그저 내 옆에 묵묵히 서 있었다.

소녀의 어머니가 무릎 꿇으며 내게 감사의 말을 전했을 때, 나는 먼 길을 걸어오느라 마른 목을 축여줄 물을 부탁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바로 물을 가득 담아와 우리 둘에게 대접했다. 나는 그 물을 몇 모금 마신 후 천마에게 건넸다. 천마도 목이 마른 듯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그 이후에 찾아간 곳은 혼자 생활하기 힘든 늙은 노인의 집이었다. 나는 그의 집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생활이 편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의 집을 떠나기 전, 나는 그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한 바퀴 돌아볼 것을 요구했다. 그는 잠시 의아해했지만 이내 내가 시키는 대로 일어나 발을 절뚝거리며 걸었다. 힘에 겨워 보이면서도 그는 열심히 내 말에 따랐다.

그 이후에 들른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가르치며 그들에게 한가지씩 무언가를 요구했다. 사람들은 모두 내 요구를 들어주었다. 천마는 줄곧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곁을 따랐다.

 

어땠나?”

 

뭐가?”

 

일을 마치고 도관으로 돌아가던 도중 내가 천마에게 물었다.

 

오늘 있었던 일 말이다.”

 

천마는 앞만 보고 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만난 사람들 모두 내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나? 난 그들에게 힘으로 명령한 적이 없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지. 그런데 어땠지?”

 

천마는 칫 하는 소리만 내며 걸음을 재촉하여 나아갔다. 굳이 대답을 캐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반응한다는 것 자체가 오늘의 일은 충분히 성과가 있었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그 뒤로 우리는 늘 있는 사소한 이야기만 나누며 산을 올랐다. 도관에 도착할 때쯤 날은 저물어 있었다.

 

 

 

 

천마가 이곳에 살기 시작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오늘도 천마는 바위 위에 올라가 해 뜨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꼴사나운 모습으로 기어올라 바위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먼저 올라와 있던 천마에게 물었다.

 

이곳의 생활은 할 만한가?”

 

거의 그렇지.”

 

나는 오늘도 천마의 옆에 앉아 오랫동안 해가 뜨는 것을 바라봤다.

우리 둘은 항상 이쯤 되는 시간에 바위 위로 올라왔다. 어둠이 물러가고 잠겨있던 세상이 점차 선명해져 가는 이 시간대. 세상을 밝게 비추지만 마냥 환하지도 않은, 이 떠오르는 과정의 시간에 우리 둘은 이렇게 앉아 있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나는 이곳에 와서 천마와 함께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해 뜨는 것을 보는 게 좋으냐?”

 

아니, 별로.”

 

나의 질문에 천마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술잔을 집어 들었다.

 

나는 좋아한다.”

 

천마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손을 멈추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 나라를 해 뜨는 나라로 만들 것이다. 해가 비추면 어둠이 물러가는 지금처럼, 누구라도 평등하게 비춰주는 이 빛처럼, 모두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것이다. 그게 내 꿈이다.”

 

천마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고 묻는 듯 쳐다보는 천마의 표정에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천마는 잔에 담긴 술을 단번에 목 안으로 들이부었다. 그러고는 술기운이 가득 담긴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너 정도면 인간 중에서 거의 최고로 강해. 나한테 한번 이겼을 정도로. 그렇게 강하면서 왜 그딴 생각을 하고 살지? 창피하지도 않나?”

 

창피하지 않다. 모두에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창피할 리가 있겠나.”

 

나는 당당하게 말했고, 천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슬슬 가야겠군.”

 

해가 상당히 위로 떠올랐다. 하루가 시작되었기에 더 이상 느긋하게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흙먼지들을 털어냈다.

 

오늘도 전에 갔던 데로 갈 거다. 따라올 테냐?”

 

이미 명령한 상태 아니었던가? 따라올 때까지 귀찮게 달라붙을 거면서 생색내긴.”

 

좋다. 바로 출발하지.”

 

시간에 여유가 있진 않았다. 지난번 때와 달리 오늘은 할 일이 많았기에 아침 일찍부터 출발해도 한밤중이 되어야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천마도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흙과 먼지를 털어냈다. 날개가 있는 천마와 달리 나는 직접 바위를 기어 내려가야 했기에 더욱 서둘러야 했다. 나는 바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 뒷걸음 한 발을 아래로 내딛으려 할 때였다.

 

업혀라

 

천마가 나에게 등을 내어주며 말했다.

 

업히라니?”

 

넌 못 날잖아. 그렇게 먼 곳까지 굳이 걸어가야 하나?”

 

천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자신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 켠에 뿌듯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항상 자기 자신밖에 몰랐던 이 아이가 지금은 다른 사람을 위해 등을 내어주는 것을 보고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천마는 시야를 전부 가릴 정도로 커다란 날개를 눈앞에 펼치며 내가 올라탈 수 있도록 한쪽 무릎을 꿇어 몸을 낮췄다.

 

내가 올라타도 나는 데 문제없나?”

 

얕보지 마라. 닥치고 빨리 타.”

 

나는 천마의 넓은 등에 안겨 그 몸을 안았다. 그와 동시에 천마의 날개가 펄럭거렸다. 점차 몸이 떠오르는 것이 느껴지며 발밑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점점 멀어져 보였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이 감각에 몸을 맡기며, 나는 기쁨과 설레는 마음으로 천마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 잠깐. 너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조금만 천천히...”

 

등에 업힌 것을 후회하기까진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공중에 떠오르자마자 천마는 미친 듯이 질주했고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걸어 다닐 땐 한참을 보이던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갈라진 구름의 파편들이 내 얼굴을 뒤덮었다.

천마의 속도는 너무나도 빨랐다. 날아다닌다는 건 원래 이런 건가. 아니, 그보다 너무 난폭한 게 아닌가. 굳이 이렇게 위아래로 날뛰며 하늘을 헤집듯이 날 필요가 있는 건가. 등에 올라탈 때만 해도 왕을 태우고 다니는 고귀한 말처럼 유유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만, 애초에 이 아이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꽉 잡아라. 전속력으로 갈 테니.”

 

이보다 더 빠를 순 없을 거라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천마는 말 그대로 있는 힘껏 속력을 냈고 나는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구름 속을 뚫고 하늘을 날아다녔다.

 

 

다 왔다. 내려.”

 

천마에게 매달렸던 팔을 풀고 지상에 발을 붙였다. 발이 땅에 닿아있다는 감각이 이토록 안정감 있었을 줄은 몰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확실히 오늘 와야 할 곳에 제대로 도착하긴 한 것 같았다.

 

인간한테 하늘 구경시켜주는 것도 재밌네!”

 

나는 거울이 없는 대신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어 거기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바람에 흩날려 엉망진창이 된 머리, 영혼이 빠져나간 듯 초점 없이 퀭한 눈. 도저히 정상적인 몰골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는 이런 모습으로 지내야 하는 건가.

 

어땠냐. 이 몸의 속도는. 대단하지?”

 

천마는 마냥 신난다는 듯이 엉망이 된 내 앞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말했다. 이 아이와 만난 이후로 가장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천마의 옆을 지나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갈 길을 걸었다. 천마는 그런 나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내 뒤를 따라왔다.

 

내가 한 일은 지난번과 크게 다를 일이 없었다. 늘 그렇듯이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을 뿐이다. 아니, 조금은 달랐다. 지난번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곁을 따라다니기만 하던 천마가 오늘은 내가 하는 일을 도왔다. 그 일은 기껏해야 어린아이 한 명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들뿐이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천마는 네가 일을 끝내야 돌아갈 수 있으니까라며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나에겐 천마의 그런 변화가 무엇보다도 크게 느껴졌다.

예상과 달리 일을 다 끝마쳤음에도 해가 저물지 않았다. 나는 천마와 함께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 밖을 빠져나왔다. 모든 일이 끝났기에 이제 도관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이번에도 천마는 어김없이 등을 내어주며 말했다.

 

업혀라.”

 

아니, 먼저 가라. 난 걸어갈 테니.”

 

 

 

 

해가 뜨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도 두 팔과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높은 바위를 기어 올라갔다. 이 짓도 자주 하다 보니 이제 능숙해졌다.

 

오오~ 기어오르는 속도가 장난 아닌데?”

 

오늘도 천마는 나를 내려다보며 즐거운 듯이 웃었다. 오늘은 나도 웃었다.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수고했다. , 이거라도 마셔.”

 

정상에 올라온 이후 거친 숨을 몰아쉬자 천마가 술이 가득 담긴 술잔을 건넸다. 처음엔 자신이 마시던 것을 주는 건가 했으나, 자세히 보니 천마의 잔은 따로 있었다. 늘 자기 것만 챙기던 녀석이 나에게 주려고 내 잔까지 따로 가져온 모양이었다.

 

고맙다. 덕분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겠군.”

 

나는 천마의 술잔을 받아 마른 목을 축였다.

 

오늘은 어디로 갈 거냐?”

 

아무 데도 안 갈 거다. 간다 해도 걸어갈 거다.”

 

나는 약간의 취기에 몸을 맡겨 그대로 천마 옆에 주저앉았다. 새벽노을이 아름다웠다. 늘 그랬지만 말이다.

 

이 짓은 언제까지 할 거야?”

 

천마가 물었다.

 

뭘 말이지?”

 

저 산 밑에 있는 약한 인간 녀석들 챙겨주는 거 말이야. 계속하려는 건 아니지?”

 

계속할 거다. 모두가 잘살 수 있는 세계가 올 때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말이다.”

 

천마가 술 한잔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널 따라 돕는 건 계속하겠다만 아마 그렇게는 안 될 거다. 누가 뭐라 하든 자연의 섭리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강자는 먹고,”

 

약자는 먹힌다. 그게 다인가?”

 

천마는 당황한 듯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천마의 말을 끊은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천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우리는 약하다. 비록 힘도 약하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도 가지지 못했다만, 그것이 마땅히 죽어도 될 이유는 되지 못한다.”

 

“...”

 

나는 죽지 않을 거다. 불로불사의 도술을 익혀 이 약한 육체로도 살아갈 수 있게 할 거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모두. 약자가 먹히는 게 당연한 이 세상을 바꾸고야 말 거다.”

 

천마는 잠시 멈춰버린 듯 아무 말도 않고 나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손을 움직여 술을 퍼다 마시며 말했다.

 

그러는 너희도 약자가 되기는 싫으면서. 그래서 맨날 땀 흘리며 수행하는 거 아녔나?”

 

우리가 수행을 하는 건 모두를 지키고 세상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남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신자들에게, 그리고 천마에게 항상 가르쳤다. 필요할 때가 아니면 싸워선 안 된다고. 싸우는 힘을 사용하는 건 언제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면 안 된다고. 신자들은 항상 내 말을 명심하고 그에 잘 따랐다. 그러나 천마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축생계라고 하는 지옥을 아느냐?”

 

나는 천마에게 물었고, 천마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 무덤덤하게 답했다.

 

들어는 봤지. 죄를 지으면 가는 곳이잖아?”

 

단순히 죄가 많다고 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죄의 무게와는 상관없이 힘으로 남들을 지배하려는 자들, 할 줄 아는 거라곤 빼앗는 것밖에 모르는 자들이 가는 곳이다. 그래서 거기 있는 영혼들은 대부분 사나운 짐승이지.”

 

아하... 그러니까, 지옥에 가기 싫으면 네 명령대로 살아라, 이건가?”

 

천마는 그렇게 장난치듯이 말했다.

 

나는 가르쳐주는 것뿐이다. 그 강한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너를 포함한 모두에게 살기 좋은 세상이 오지 않겠나. 어떻게 할지는 네 자유다.”

 

천마는 술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기가 자신의 안방인 것 마냥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이번에도 내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천마를 불렀으나,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그렇게 깊게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었다.

 

지옥에 간다고..?”

 

천마는 그렇게 혼자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 이 나라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힘썼다. 아니, 이제는 우리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천마는 내가 가는 곳 어디든지 함께 있었고, 내가 하는 일에도 언제나 힘을 보탰다. 천마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도왔다. 우린 언제나 함께였고, 천마는 언제나 나를 잘 따랐다.

 

그렇게 수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협력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천마가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말하지 않았나.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얼마 전, 이 나라의 다른 지역에 큰 재해가 발생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갈 곳을 잃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딘가 살 곳을 마련해야 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온 곳이 우리가 사는 곳 근처였다. 나에게는 그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사람들의 거처를 만들기 위해선 자리가 필요하다. 이 빼곡한 나무들 사이에 인간들이 살 자리가 없다는 건 잘 알지 않느냐.”

 

그래서... 자연을 파괴하겠다는 거냐.”

 

천마가 나를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내가 한 선택은 바꿀 수가 없었다. 나는 인근의 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집을 지을 것을 명령했다. 단시간 안에 살기 좋은 집을 지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사람이 몸을 숨길만 한 것은 있어야 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곧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우리들, 동물들이 살던 곳이다. 인간들이 몇 명이 오든 자리를 비켜줘야 할 이유는 없어.”

 

동물에겐 털이 있고, 겨울 동안 잠을 자며 추위를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약한 인간은 그러지 못한다. 이곳에 간단한 무언가라도 지어두지 않으면 그들은 전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게 될 거다.”

 

나는 떼쓰는 아이를 달래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 겨울이 온다는 걸 천마도 모를 리가 없었다. 불과 며칠 만에 살결을 스치는 바람의 냉기가 몰라볼 정도로 차가워져 있었다. 밤이 길어지고 해가 뜨는 시간 또한 현저히 늦어졌기에 나는 이전처럼 이른 새벽 해 뜨는 것을 바라볼 수 없었다. 최근 늦게까지 남아 해 뜨는 것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천마 혼자였다.

 

태자님, 이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내 명령에 의해 모여 기다리던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그래. 시작해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사람들은 도끼를 들고 일어나 나무를 패고 풀을 베기 시작했다. 천마는 그 모습이 보기 싫다는 듯 발을 쿵쿵대며 그 자리를 떠났다.

 

최근 우리에겐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살기 힘든 환경이 되는 만큼 나의 일은 더욱 많아졌고, 그와 동시에 천마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아졌다. 그와 반대로 내가 천마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일은 적어졌다. 마지막으로 그 아이가 웃는 걸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일이 바쁘던 탓에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걱정을 지웠다. 천마는 여전히 사람들을 도왔고 내 가르침에 잘 따라와 주었다. 조금만 더 견디면 되는 일이었다. 상황이 좋아지고 사람들이 살기 좋아지기만 한다면, 우린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진 못했다.

 

 

 

 

수개월이 더 지나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열매가 끝없이 자라나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메말라갔고, 곡식들이 펼쳐져 있던 황금빛 땅은 차가운 흙과 먼지만이 날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굶주렸고, 괴로움에 시달렸으며, 노인과 아이들이 죽어갔다. 그들은 나에게 기도하고 구원을 바랐지만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태자님, 희소식이 있습니다.”

 

그런 나의 고뇌를 깨뜨리듯 어느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쁜 듯이 달려오는 신자의 말에 나는 저절로 관심이 쏠렸다.

 

무슨 일이냐?”

 

어제 새벽 멧돼지 한 마리가 마을 사람들을 습격했습니다. 갑작스레 튀어나와 공격한 탓에 사람들을 대피시킬 시간도 없었습니다.”

 

신자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다행히 그곳에 있던 저희 신자들이 싸워 멧돼지를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크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단 것은 물론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안도감을 느낀 더 큰 이유는 그들이 멧돼지를 잡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유난히 추운 올해 겨울, 곡식은커녕 풀 한 포기조차 제대로 자라지 않는 지금, 멧돼지 한 마리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동물의 고기는 식량이 될 수 있으며 그 가죽은 추위를 이겨내기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한 희소식은 없을 것이다.

 

당장 가보지.”

 

.”

 

나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밖을 나오자마자 할 일 없이 주변을 돌아다니던 천마를 발견했다. 나는 마침 잘됐다 싶어 천마를 불러세웠다.

 

쿠로코마. 일이 생겼다. 지금부터 마을로 내려갈 거다.”

 

그래서?”

 

천마는 쏘아붙이듯이 내게 말했다, 그 얼굴에는 싫은 표정이 가득했다.

 

힘쓸 일이 있을 거 같다. 같이 가서 도와주면 좋겠군.”

 

천마는 힘 빠지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 모두 그렇지만 천마 역시 며칠 동안 먹은 것이 거의 없었다. 남들보다 덩치가 크고 힘을 많이 쓰는 만큼 천마는 굶주림에 특히나 약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에 기운이 넘치던 녀석도 지금에 와서 힘쓰는 일을 기뻐할 리가 없었다.

 

부탁한다.”

 

그래, 간다. .”

 

천마는 내 뒤에 따라붙었다. 산을 내려가는 도중 가끔 투덜거리는 말을 내뱉기는 했지만 천마는 곧잘 내 뒤를 잘 따라왔다.

 

한겨울의 찬바람이 불어닥치는 땅에 거대한 멧돼지의 사체가 드러누워 있었다. 듣던 대로 크기가 상당한 녀석이었다. 아마 추운 겨울 탓에 산속에 먹을 것이 없어지니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 습격을 한 것이겠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었다.

 

너는 이걸 들고 나를 따라와라. 사람들에게 옮겨주기만 하면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 거다.”

 

나는 멧돼지의 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수십 명이 모여 힘을 써야 했겠지만, 천마의 힘이라면 혼자서도 들만한 것이었다.

 

먼저 가 있겠다.”

 

나는 길을 앞장섰다. 사람들이 다치진 않았다고 하지만 혹여 다른 피해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걸었을 때였다.

 

멈춰.”

 

천마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고, 나는 몸을 움찔하며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는 천마의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나? 왜 죽였지?”

 

천마는 죽어있는 멧돼지의 모습을 보란 듯이 가리키며 말했다. 그 얼굴엔 나를 향한 분노가 드러나 있었다.

 

먹을 것을 빼앗기 위해 사람들이 사는 곳을 습격한 녀석이다. 뭔가 문제 되는 거라도 있나?”

 

이 녀석, 내 부하다.”

 

그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천마에게 물었다.

 

부하가 있었나?”

 

천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이를 악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곧바로 천마를 달래듯이 말했다.

 

부하의 죽음은 안타깝게 됐다. 하지만 그 멧돼지가 먼저 공격한 이상,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약한 자들이 무참히 죽어가도록 놔둘 수는...”

 

왜 싸웠냐고 물은 적 없다. 왜 죽였지?”

 

천마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욱 몰아치듯이 물었다. 언성을 높이는 천마와 달리 나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침착하게 말했다.

 

그 멧돼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있던 신자들 중에 멧돼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 만한 힘을 가진 자가 없어서 그랬다. 우리가 미숙했던 탓이다. 미안하다.”

 

나는 천마에게 고개 숙여 말했다. 내가 한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실제로 그 자리에 그 정도 크기의 멧돼지를 붙들어 놓을 만한 힘을 가진 자들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게 가능했다 하더라도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굶주린 자들이 너무 많았다. 생명이 꺼져가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만약 멧돼지를 죽이지 않고 살려 보냈다면, 다른 더 많은 이들이 굶어 죽었을 거다. 어쩔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선, 다른 누군가를 먹어야 했다.

 

이해해줄 거라 믿는다.”

 

그래... 네 잘못은 아니지. 원래 이런 세상이니.”

 

천마는 그렇게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죽은 자신의 부하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천마가 자신의 부하의 명복을 빌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천마는 그러지 않았다. 천마는 이내 죽어있는 자신의 동료에게서 매정하게 눈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나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인간에게 기대가 너무 컸군. 넌 다를 줄 알았는데.”

 

천마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그대로 아무 말 없이 걸어가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붙잡을 수 없었다. 나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천마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한겨울의 찬바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와 신자들은 모두 각자의 방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그날 이후, 천마는 우리에게서 모습을 감췄다. 날씨가 이 정도로 추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천마는 다시 도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 소리가 매섭게 몰아치며 냉기가 스며들어왔다. 우리 모두 추위의 떨었고 수행을 하는 사람은커녕 도관 내를 돌아다니는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다. 한겨울의 추위는 우리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때, 그런 우리 모두를 일어나게 할 외침이 도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죽었다! 사람이 죽었다!”

 

문을 덜컥 여는 소리와 사람들이 달려가는 발소리가 잇따라 들려왔다. 신자들은 모두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몰려 들어갔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태자님! 여깁니다.”

 

신자들은 전부 한곳에 모여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먼저 그곳에 모인 자들이 하나둘씩 길을 비켜준 덕에 나는 곧바로 싸늘하게 죽어있는 시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은 우리 도관의 신자였다.

상흔으로 보아 시체는 칼에 베여 죽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다리 한쪽이 없었다. 그 흔적을 보아 누군가 죽이고 난 후에 일부러 다리를 잘라간 것으로 보였다.

 

이게 시체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시체를 처음 발견했다고 하는 신자가 내게 피 묻은 칼을 가져오며 말했다. 그 칼은 우리 도관의 것이었다. 우리 신자들은 수행을 할 때 외엔 무기는 전부 창고에 넣어둔다. 신자를 죽인 녀석은 우리 도관의 무기가 어딨는지 어떻게 알고 꺼내왔을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죽은 신자는 신자들 중에서도 상당한 도술을 익힌 자였다.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 하더라도 일반인에게 당할 만한 자가 아니었다.

어느새 신자들의 눈길이 모두 나를 향해 있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도관의 위치를 잘 알고 있으며 강한 도술사를 일방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자. 그에 해당하는 자는 몇 없었다.

 

며칠 동안 범인 찾기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으며 날씨는 날이 갈수록 더욱 추워졌다. 모두들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주기보다 현재의 추위를 이겨내는 데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을 무렵,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번에도 저마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기에 시체가 발견된 것은 이미 피가 다 얼어붙어 싸늘하게 굳은 뒤였다.

이번엔 칼에 당한 것은 아니었다. 베인 듯한 상처가 없고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맨주먹에 맞아 죽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번엔 팔 하나가 없었다. 그 흔적으로 보아 칼이나 도구를 사용한 것이 아닌 그저 힘으로 팔을 잡아 뜯어간 것으로 보였다. 오로지 힘만으로 말이다. 아무런 도구 없이 맨손으로 사람의 팔을 뜯어갈 수 있는 자.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자가 얼마나 될까.

 

눈이 발목까지 쌓일 정도로 내린 어느 날 아침에 세 번째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몸통의 일부분이 잘려 나가 있었다.

다만 이번엔 시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발견되었기에 당장에라도 쫓아간다면 살인범을 잡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러지 못했다. 그곳엔 우리들의 발자국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눈이 새하얗게 뒤덮인 그곳엔 범인은 물론, 죽은 신자의 발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신자들은 모두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 말대로였다. 눈이 가득 쌓인 땅에 아무런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시체를 그 자리에 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태자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방 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도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들어온 사람은 신자인 후토와 토지코였다. 그 둘은 다시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에게로 다가왔다.

 

태자님...”

 

후토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이미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신자들의 불안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뭔가 조치를 취하심이...”

 

후토는 말끝을 흐리며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그 눈길을 토지코에게로 돌렸다. 토지코는 숨을 한 번 내쉬더니 후토의 말을 대신 이어갔다.

 

저는 신자들을 죽인 자가 천마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사라진 녀석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 일을 벌인 데에 대한 책임을 묻고, 앞으로의 피해가 없도록 막아야 합니다.”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태자님.”

 

그 둘은 그렇게 말하며 동시에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이미 그 둘이 오기 전부터 그렇게 말할 걸 알고 있었다. 그 말이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오기 전부터 내가 그렇게 했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기에 더욱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알았다. 조만간 그렇게 하겠다. 너희들이 나보다 판단력이 좋구나.”

 

나는 읽던 책을 한쪽으로 밀어 넣으며 자리를 정리했다. 그와 동시에 애써 외면하던 내 마음도 함께 정리했다. 모두 해야만 할 일이었다. 모든 것을 마치고,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태자님!”

 

자리에서 몸을 다 일으키기도 전에 또 다른 신자가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태자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숨을 헐떡이는 그는 내가 그를 꾸짖기도 전에 황급히 소리쳤다.

 

천마를 찾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우리 세 사람 모두 순간적으로 몸이 굳은 듯 멈춰 섰다. 후토와 토지코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도 내 표정을 봤으니 알 것이다. 이미 결심은 마쳤다.

 

어디 있는지 아는가?”

 

신자 한 명이 뒤를 쫓고 있습니다.”

 

길을 안내해라. 그리고 다른 자들을 전부 불러모아라. 천마를 쫓아간다.”

 

나는 검을 집어 허리춤에 차고 문을 나섰다. 후토와 토지코도 당연하다는 듯이 전투 준비를 갖추고 내 뒤를 따라 나왔다. 도관 전체가 한껏 소란스러워지며 내 명령에 따른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하나둘씩 모여드는 신자들도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들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앞서 천마를 쫓아간 신자는 자신이 걸어간 길에 표시를 남겼다. 바닥에 나뭇가지로 그은 듯한 자국이 한 줄로 쭉 이어져 산속 깊숙한 곳으로 향해 있었다. 우린 조용히 숨을 죽이고 그 표시를 따라갔다.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남은 나무 사이를 해치며 표시를 따라가던 도중, 그 표시는 어느 시점에서 뚝 끊겨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엔 대신 누군가의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우린 모두 서로의 표정을 바라봤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조용히 쫓아갈 필요가 없었다. 나는 바닥에 뿌려진 핏자국을 따라 내달렸고 다른 이들도 내 뒤를 따랐다.

 

태자님. 저기..!”

 

후토가 손끝으로 멀리 있는 누군가를 가리켰다. 나무 사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 모습이 누구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보통의 인간에 비해 월등히 큰 키, 그리고 검은 날개. 조금 더 가까이 그 모습에 다가갔을 때, 나는 신자들을 죽인 그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예상하던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천마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시체의 목을 붙잡아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 시체가 앞서 천마를 쫓던 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마가 그자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굳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옷도 입혀지지 않고 알몸으로 축 늘어져 있는 시체의 몸 곳곳에는 얻어맞은 자국과 물어뜯긴 자국이 선명했다.

 

쿠로코마...”

 

, 왔어?”

 

나와 눈이 마주친 천마는 다시 눈을 돌려 시체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 눈빛과 목소리에 죄책감은커녕 어떠한 당혹감도 없었다.

 

무슨 짓이냐.”

 

천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라. 당장.”

 

목소리를 한껏 높여 다그치듯이 물었지만 천마는 내 말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천마는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입을 시체의 팔뚝으로 가져갔다. 천마가 입을 열고 시체의 팔뚝 살을 물었다. 시체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살이 뜯겨나갔고, 그 살점은 고스란히 천마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뜯겨나간 살점이 천마의 입안에서 우물우물 씹히며 격하게 핏물을 뿜어댔다.

 

타이밍이 안 좋군. 들키면 한 입 권해보려고 했는데. 이 녀석은 맛없어. 지금까지 먹던 녀석들 중 제일 별로야.”

 

나를 포함한 이곳에 있는 자들의 얼굴이 모두 심하게 구겨졌다. 지금까지 먹던 녀석들이라고 했나. 죽은 신자들의 신체의 일부를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었다. 그걸 전부 먹었단 말인가? 인간을..?

 

고요함 속에서 천마가 살점을 씹는 소리만이 울렸으며 이윽고 그 살점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구역질이 날뻔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목구멍 안으로 인간의 살점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어느 때보다 힘겹게 입을 열어 천마에게 물었다.

 

다른 신자들은 모두... 네가 죽였나?”

 

그랬지.”

 

너무나도 쉽게 들려온 대답이었다.

 

왜 죽였지?”

 

먹는 게 뭐가 이상한데? 너희도 언제나 동물을 먹잖아.”

 

천마는 피가 잔뜩 섞인 침을 바닥에 내뱉으며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천마는 사람을 먹으려고 죽인 게 아니었다. 정말로 굶주림을 견딜 수 없었다면 죽인 사람의 시체를 남김없이 다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마는 신체의 일부만을 잘라갔으며 그 시체를 일부러 발견되기 쉬운 곳에 방치해뒀다. 천마는 사람을 먹기 위해 죽인 게 아니었다.

 

왜 먹었냐고 물은 적 없다. 왜 죽였지?”

 

천마는 잠시 말을 하지 않더니 들고 있던 시체의 몸을 뒤로 내던져 버렸다. 시체는 그대로 멀리 날아가 땅에 철푸덕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천마는 바닥에 핏물을 한 번 더 뱉더니 나를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지옥에 갈 수 있다며?”

 

천마는 그렇게 말했다. 마치 지옥에 가고 싶다는 말투로.

 

네가 그랬잖아. 남들을 짓밟으면 지옥에 간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적어도 지옥에 가고 싶어서 사람을 죽였다는 말로는 나에게 이 상황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그때의 일 때문인가? 부하의 죽음 때문에 인간에게 복수하려는 건가?”

 

천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건 모두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모두가 아니라, 너희들을 위한 거겠지.”

 

천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천마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매서운 눈빛으로 우릴 노려보았다.

 

언제나 그랬지. 모두를 위한다고. 그래놓고 너희들이 저지른 짓은 어땠지? 단 한 번도 너희들이 인간 이외에 다른 생물을 위하는 걸 본 적이 없었어.”

 

천마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우리 모두 천마가 다가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쿠로코마. 살기를 거두고 뒤로 물러나라. 명령이다.”

 

닥쳐라.”

 

천마가 우리를 향해 더욱 다가왔다.

 

너희들의 위선은 이미 질리도록 봤어. 해 뜨는 나라? 모두가 잘사는 세계를 만들겠다고? 아니, 나는 너희를 죽이고! 지옥에 갈 거다! 강자만이 전부인 약육강식의 세계에 말이지!”

 

나는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들었고, 그 칼끝은 천마를 향해 있었다. 천마가 걸음을 멈춰 섰다. 신자들도 각자 무기를 들고 멈춰선 천마의 주변을 둥근 원형으로 포위하듯이 둘러쌌다. 하나같이 천마를 향해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뭐냐 너희들은. 싸우는 건 언제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게 배우지 않았나? 그동안 우리의 목숨을 빼앗고 잡아먹던 게 누구였지? 겉으로만 착한 척, 공정한 척, 세계를 지배하고 남들을 짓밟아 왔던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라고!”

 

천마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자신을 둘러싼 신자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그 모습은 분노의 외침을 넘어 가히 포효에 가까웠다. 인간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그 모습 역시 더 이상 내가 알던 천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싸워야 했다.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내가 널 잘못 가르쳤구나.”

 

아니, 제대로 가르쳤어. 약자가 강자를 지배하는 세계가 얼마나 토악질 나오는지 알게 해줬으니까.”

 

천마가 두 날개를 크게 펼쳤다. 나를 향해 피 묻은 송곳니를 드러내는 얼굴은 늑대보다 더 늑대 같았다.

 

천마가 한 발을 더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천마를 둘러싼 신자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신자들은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고 그 기세에 천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덤벼라. 약한 쓰레기들.”

 

신자들의 미숙한 공격은 천마에게 상대도 되지 못했다. 휘두른 검을 피해 주먹으로 내리쳐 부수고 내뻗은 창은 잡아 부러뜨렸다. 신자들의 공격은 천마의 몸에 작은 생채기만 남길 뿐,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와 반대로 신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쓰러졌다. 주먹질 한 번에 한 명, 발길질 한 번에 대여섯 명. 천마는 신자들의 나약한 몸을 한 손으로 잡아 내던지고 또 바닥에 패대기쳤다. 또 다른 신자가 그 공격에 나가떨어지기 전, 나는 주저 없이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천마를 향해 검을 크게 휘둘렀고, 천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몸을 뒤로 물러 공격을 피했다. 천마도 그에 반격하여 날개를 후려쳤고, 나 역시 당연하다는 듯 받아쳤다.

순간적으로 나와 천마의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마는 내 머리 위로 발을 들어 내리찍었고, 나는 그걸 피해 다시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격렬한 싸움 속에서 우리는 그저 서로를 향해 공격을 주고받기만을 계속 반복했다.

 

시간은 흐르고 천마의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칼에 베이고, 창에 찔리고, 몸 곳곳에 화살이 박혀도 미친 듯이 날뛰는 천마의 움직임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천마가 지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전보다 더 날뛰는 천마의 모습과 달리 싸움은 단시간에 끝이 났다.

 

후토! 토지코!”

 

빛이 번쩍였다. 내가 천마와의 싸움에서 거리를 벌리자 도술을 이용한 후토의 불과 토지코의 번개가 양옆에서 천마의 몸을 감쌌다. 천마는 약간의 신음을 내뱉었지만, 천마의 강한 육체는 그 둘의 공격조차도 버텼다. 천마는 불과 번개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견뎠고, 이내 날개를 크게 펼치며 모든 공격을 뿌리치듯 튕겨내 버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공격을 튕겨낸 천마는 섣불리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검을 잡고 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천마는 뒤늦게 자세를 잡고 나를 향해 주먹을 날렸지만, 준비된 공격이 아닌 느린 주먹은 가볍게 몸을 숙여 피할 수 있었다. 나는 몸을 숙인 그대로 천마에 품에 파고들었다. 내 두 손에 움켜쥔 검을 날카롭게 세웠다. 칼끝이 번뜩이고 공기를 가르며 천마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이번엔 멈춰 서지 않았다.

 

검이 천마의 몸을 파고들었다. 나는 정확히 천마의 심장을 꿰뚫었고, 몸을 관통하여 등을 뚫고 나올 때까지 검을 찔러 넣었다. 심장을 찢고, 뼈를 가르고, 두꺼운 살덩어리를 뚫는 감각을 전부 느끼고 나서야 검은 완전히 천마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날뛰던 천마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멈췄다. 신자들도 전부 공격을 멈추고 나와 천마의 모습을 바라봤다. 모두들 세계가 멈춘 듯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천마의 몸이 채 움직이기도 전에 박힌 칼을 빼내었다. 천마는 신음을 내뱉었고, 이윽고 쏟아지는 피의 분수와 함께 그 거구의 몸이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천마의 몸이 주저앉아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내 앞으로 쓰러졌다. 나는 바닥에 칼을 버리듯이 내려놓고 쓰러지는 천마의 몸을 받아 그 몸을 끌어안았다. 천마의 날개가 축 처졌다. 뚫린 가슴의 구멍에서는 쉴새 없이 피가 쏟아져 나왔다. 천마를 안은 손으로 등에 뚫린 구멍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했지만 걷잡을 수 없이 새어 나오는 피는 이미 어찌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나는 천마의 몸을 안고 그 귓가에 속삭였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천마도 떨리는 팔을 들어 올려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마치 남아 있는 힘을 쥐어 짜내듯, 천마는 부서질 듯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희미해져 가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죽으면... 다시 만나자고...”

 

몇 명의 신자들이 나를 부르며 달려왔고 나는 손을 내밀어 그들을 멈춰 세웠다.

끌어안은 육체에서 더 이상 심장의 고동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천마는 죽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해는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들어 거대한 바위 위를 올려다보았다. 구름을 잔뜩 머금은 새벽 햇빛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답게 빛났고, 그 빛을 등진 바위 역시 한결같이 장엄한 모습을 유지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바위 위에 있던 천마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바위 위를 기어 올라갔다. 이 위를 올라가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는 탓에 아무런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이 위를 올라간다 한들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허전한 마음에 어딘가 무너져 내리고 싶었다만, 내 팔과 다리는 원망스러울 정도로 능숙하게 바위 위를 기어 올라갔다.

바위의 정상까지 도달해 봤지만 공허한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는 그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나는 전에 그랬던 것과 같이 그 자리 한가운데 앉아 세계를 바라봤다. 햇살에 물들어가는 세계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내 옆에서 그걸 함께 봐주고 그에 대해 이야기할 천마는 더 이상 없었다.

 

언제부터, 뭐가 잘못되었던 걸까. 야생의 천마를 길들이려 한 것부터인가. 천마의 동료인 멧돼지를 죽였을 때부터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인간이 동물을 입에 대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인가. 아니, 그 무엇도 잘못되지 않았다. 원래 이런 세상이었다.

손끝에 심장을 꿰뚫는 감각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살을 찢고, 피가 뿜어져 나오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찔러 넣는 그 감각이 아직도 손안에서 맴돌았다. 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천마를 이길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분명, 일부러 그랬던 거다. 그 아이는 단순하고 힘밖에 모를지언정 같은 공격에 두 번이나 당할 정도로 싸움에 있어서 바보는 아니었다. 신자들을 죽여놓고 흔적을 숨기지 않은 것도, 나에게 들켰을 때 날아서 도망치지 않은 것도, 심장이 뚫릴 걸 알고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던 것도. 처음부터 내 손에 죽을 생각이었던 거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천마와의 싸움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 왜 그때는 몰랐을까. 천마의 표정엔 인간들을 향한 분노가 가득했을지언정, 나를 향한 살기는 드러내지 않았다. 정작 그 눈동자 속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날카롭게 노려보던 자는 누구였는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달려들어 그 가슴에 칼을 찔러넣은 자는 누구였는가. 한평생 인간을 초월한 성인의 경지에 오르고자 했지만, 나 역시 한 마리의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느덧 해는 완전히 떠올라 세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벗어난 세계는 모습을 드러내고 그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늘 똑같이 해가 떠오르듯 나는 오늘도 똑같은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 나라를 비추는 군주로서 이전에 내가 살아온 날과 다름없는 날들을 보낼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누군가를 지배할 것이고,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먹을 것이며, 내가 꿈꾸는 세계를 위해 다른 이들의 꿈을 짓밟을 것이다.

 

그 아이... 지옥에 가고 싶다고 했던가.

죽으면 정말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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