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천의 강. 그 앞에 흐르는 물살을 넋 놓고 바라보는 한 소년이 있었다. 강은 끝도 없이 넓고 깊었으며 물 흐르는 소리 하나 없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삼도천의 티 없이 맑은 물보다 더 투명한 손. 그 손은 너무나 투명해서 그 아래의 땅은 물론, 바닥에 널려 있는 작은 돌멩이들까지 비쳐 보일 정도였다. 소년은 한참을 끝없이 펼쳐진 강물과 자신의 투명한 몸을 번갈아 봤다. 몇 시간이고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려내기라도 한 걸까. 소년은 땅에 몸을 쭈그리고 앉아 그 작은 손에 돌을 집어 들었다.
오노즈카 코마치는 커다란 낫을 등에 메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며 주변 경치를 감상했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이변 때문에 유령들이 말썽이면 상사에게 혼나는 건 언제나 자신이니까. 요 며칠 계속되는 기상 이변 때문에 유령 관리가 제대로 안 된 것은 물론, 그 때문에 코마치가 듣는 잔소리는 평소보다 몇 배는 많았었다.
잘못은 천인이 했는데 꾸중은 사신이 들어야 했다. 그것이 마음에 안 든 코마치는 직접 천인을 찾아가 따졌지만 그런다고 귀담아들을 천인이 아니었다. 귀담아듣기는커녕 오히려 그 천인에게 역으로 한 소리 듣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배 타고 영혼이나 싣고 나르는 주제에 천인을 찾아오다니 격이 떨어진다나. 그 말에 욱해 덤벼들었지만 싸움도 진 탓에 제대로 만신창이였다.
“에라이. 재수 없는 천인 녀석. 나중에 그 녀석만은 내가 직접 데리러 가야지.”
물론 뱃사공인 코마치는 천인의 목숨을 거두어 갈 일이 없다. 그런 일은 다른 사신들이나 귀신장의 역할이니까. 코마치도 자신에게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염마에게 찾아가 영혼을 거두어 가는 직급으로 승진 시켜 달라고 말해봤지만 들어줄 리가 없었다. 매번 부탁할 때마다 염마가 코마치는 뱃사공 일에 더 잘 맞는다고 했던가. 일도 열심히 안 하고 맨날 농땡이 치기는 하지만 유령들을 무사히 데려오는 일만은 꼭 맡아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하는 일도 열심히 안 하는 사신이 승진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잘리지 않은 것만 봐도 뱃사공 일 하나만큼은 염마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나았다.
열심히 일을 하면 보답받는다. 꾸준히 노력하면 승진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다만 그것이 이 게으른 사신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듯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매 순간 즐겁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된다. 코마치에게 있어선 그걸로 충분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한들 뭐하나, 어차피 죽으면 다 끝인데.”
사신이 죽는다니, 만약 사신이 죽으면 다른 사신이 마중 나와 데려가려나. 그렇게 생각한 코마치는 혼자 코웃음을 쳤다.
쓸데없는 잡생각이나 하며 걷던 코마치는 어느새 삼도천에까지 와 있었다. 오늘은 제대로 땡땡이치기로 마음먹고 어딘가 술집이라도 들러 시간을 때울 생각이었다만, 오는 길에 별달리 마음에 드는 술집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이곳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렇게 게으르게 일했는데도 무의식적으로 걷다 보면 도착하는 곳은 역시 근무지인 건가. 자신의 묘한 성실함에 한탄한 코마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강가를 향해 걸음을 걸어 나갔다.
삼도천의 분위기는 지루할 정도로 고요했다. 이변 때문에 유령들이 대부분 사라진 탓에 삼도천의 모습은 평소에 비해 어색할 정도로 넓어 보였다. 듬성듬성 보이는 유령들도 달리 눈에 띄는 행동 없이 조용히만 있을 뿐이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 하나 없이 평온한 길을 걷던 도중 코마치의 귓가에 누군가의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마치가 목소리를 따라 눈길을 돌린 그곳엔 언덕 아래에 홀로 외롭게 있는 유령 하나가 보였다.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듯 소년의 모습을 한 유령은 다른 유령들과 동떨어진 곳에 앉아 돌탑을 쌓고 있었다. 소년은 손에 집고 있던 돌을 탑의 맨 위에 올려놓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돌 하나는 아빠 거...”
“어이쿠. 아직 어린데 유령이라니.”
소년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유령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아직 투명해진 자신의 몸이 익숙하지 않은 듯 손 너머로 비쳐 보이는 돌 하나를 집는 데에도 영 어색한 모습이었다. 집은 돌을 위에 쌓아 올리는 것도 다른 유령들의 행동과 달리 여간 힘겨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굳이 사신의 눈이 아니더라도 죽은 지 얼마 안 된, 아직 현세에 미련이 많은 아이라는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애들은 인생 경험이 없어서 재미있는 얘기는 잘 못 나누겠다니까.”
코마치는 그렇게 고개를 저으며 그저 자신이 갈 길을 걸어갔다.
소년은 생전에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아이라 하더라도 부모에게 있어서만큼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특별한 존재였다. 소년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미래에 훌륭한 성인이 되어 원하는 대로 마음껏 꿈을 이루고 살게 되기를 바랬다. 원래라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돌 두 개는 엄마 거...”
하지만 그런 부모의 기대와 달리 소년의 짧은 인생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받아놓고도 죽을 때까지 가족의 기대에 보답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소년은 기대에 보답하고 싶었다. 열심히 하면, 이보다 더 열심히 돌을 쌓아 올리면, 아직 살아있는 엄마 아빠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까. 그런 희망을 갖고, 소년은 바닥에 널려 있는 돌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집어 맨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돌 세 개는...”
“그게 아니지. 그래선 언제까지고 강 저편으로는 못 가.”
소년은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말을 건 목소리를 향해 올려다보았다. 소년의 앞에는 어느새 코마치가 바로 앞까지 다가와 서 있었다. 소년이 그 커다란 낫에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 것도 잠시, 이미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자각한 소년은 금방 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런 소년에게 코마치는 말을 건넸다.
“자신의 희망을 이루려는 노력은 그저 욕심의 실현일 뿐. 욕심은 망설임을 낳고, 망설임은 미련을 남기는 법이야.”
“...”
“넌 일단 그릇된 노력을 버리고 모든 걸 받아들이고 나서 강을 건너야겠다.”
코마치의 걱정 어린 말에도 소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코마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소년은 눈앞의 사신이 두렵지 않았다. 소년이 두려워하는 것은 목숨을 거두어 가는 사신이나 커다란 낫 따위가 아니었다. 이미 죽어버린 자신이 이제 두 번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자신 때문에 눈물 흘리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이 소년에게는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소년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바닥의 돌을 집어 들었다.
“돌 하나는 아빠 거...”
“모르겠다면 언제까지고 그렇게 계속해 보렴.”
“돌 두 개...”
“그저 그 미련이 나중에 한으로 변질될 게 문제야. 안타깝게도.”
코마치는 소년에게서 등을 돌렸다. 주저하는 소년을 뒤로 한 채 강을 건너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소년 앞에 계속 있어봤자 귀에 들리는 것은 돌을 쌓아 올리는 소리뿐일 것이라 생각한 코마치였다. 하지만 다음으로 코마치에게 들려온 것은 돌을 쌓아 올리는 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사신님...”
등 뒤에서 들려온 것은 딱딱한 돌의 소리가 아닌, 작고 부드러운 소년의 목소리였다. 코마치는 소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애원하듯 쳐다보는 소년의 눈빛을 바라봤다.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떻게 되긴, 끝이지. 이 뒤엔 아무것도 없어. 죽었으니까.”
이제 막 유령이 된 어린아이에게는 가혹한 말이었다. 소년도 그렇게 생각한 듯 슬픈 표정과 함께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소년은 여전히 쥐고 있는 돌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전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요.”
“상관없어. 끝도 없이 계속 무언가를 이루라고 강요할 정도로 죽음은 잔인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넌 그냥 미련이 많을 뿐이야.”
코마치는 시선을 강으로 향했다. 그리곤 그 강을 향해 들고 있던 낫을 가볍게 한 번 휘둘렀다. 고요하던 강은 낫과 함께 한번 철썩이더니 이내 어디 있었는지도 모를 배가 코마치의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코마치는 둥둥 떠 있는 자신의 배를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현세를 잊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 내게로 와. 특별히 저편까지 데려다줄 테니.”
소년의 시선이 코마치의 손끝이 가리키는 배로 향했다. 그 배에 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년도 알고 있었다. 사신의 말대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을 받아들이고 존재 자체가 기억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죽은 자라면 누구에게나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그 전에 이루고 싶은 것 한두 개쯤은 있기 마련이다.
"엄마랑 아빠한테 약속했어요. 내가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가진 건 이런 돌멩이뿐이라도..."
소년은 바닥에 널브러진 돌멩이들을 힘없이 손에 쥐어 보였다. 그리고 죽기 전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들을 떠올렸다. 쓰러져 죽어가는 소년의 옆에서 소년의 부모는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에 보답하고 싶었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코마치는 사신의 낫으로 목숨을 끊어내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어. 그런 짓을 해봐야 살아있는 부모에게는 아무것도 닿지 않아. 그냥 너의 욕심일 뿐이지.”
“...”
소년은 입을 다물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돌을 쥐고 있는 소년의 손이 차마 탑을 쌓지 못하고 멈춰 섰다. 소년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죽음을 경험한 이상 알 수밖에 없었다. 이미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짧은 인생 하나. 욕심이나 미련 따위 죽고 나선 한낱 단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걸. 다만 아직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소년의 마음을 읽은 듯, 코마치는 저 멀리 강 너머를 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원하는 걸 다 이룬 사람도, 가진 것 하나 없는 떠돌이도, 깨달음에 도달한 성인조차도, 결국 누구나 다 여기로 오기 마련이야. 죽고 나면 달라질 게 없어. 어떻게 살았냐가 중요한 거지.”
코마치의 시선이 다시 소년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소년에게 물었다.
“너는... 그동안 살아왔던 길에 만족했어?”
소년은 고개를 들고 사신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생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항상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사람들과 함께한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렸다. 굶주린 배를 숨기며 자신의 밥그릇을 건네는 아빠의 표정, 자고 있을 때면 옆에 다가와 등을 어루만져 주던 따스한 엄마의 손길. 가진 것은 많지 않더라도 소년은 남 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네.”
소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소년은 돌을 올려놓으려던 팔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더 이상 돌탑을 쌓는 데에 헛된 노력을 쏟아붓지 않았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소년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 마디,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더 듣고 싶었다. 자신을 향해 죽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 괜찮다. 죽어도 된다. 소년은 그 말이 듣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소년의 목숨은 끊어졌다.
소년은 여전히 쥐고 있는 돌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저 돌탑 앞에 주저앉은 채 애처로운 눈으로 코마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소년은 듣고 싶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된다고. 그냥 편히 쉬라고. 그 말이, 사신의 입을 통해 소년에게로 전해졌다.
“이제 됐어. 무너뜨려도 돼.”
그 말과 함께, 소년의 떨리는 손에 힘이 풀리며 그동안 꼭 쥐고 있던 돌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손을 들어 자신이 쌓아 올린 돌탑을 뭉개 무너뜨렸다. 아빠 거, 그리고 엄마 거,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왔던 것 전부. 쌓아 올린 돌과 함께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잘 있어요..."
마지막 인사를 마친 소년은 줄곧 구부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발밑에 널브러진 돌들을 뛰어넘어 코마치에게로 걸어 나갔다. 코마치는 자신 앞에 당당히 선 소년을 향해 작게나마 웃음을 지었고, 소년도 눈물을 닦아내며 그 표정을 따라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비치는 삼도천에 사신이 노를 저으며 나아갔다. 그리고 그의 배엔 어린 소년의 유령이 함께 타고 있었다. 소년은 노를 젓는 사신 옆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지,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늘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코마치는 어땠을까. 하나도 재미없었다. 이렇게 평범한 아이가 죽고 나서 평범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다. 소년이 살아온 이야기 따위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었다. 그러면 뭐 어떠한가. 코마치에게 있어서 인생에 의미를 남기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죽는 순간까지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했더라도 스스로 만족하는 인생을 살아왔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코마치는 낮의 일을 떠올렸다. 코마치는 여전히 기회가 된다면 그 천인의 목숨을 거두어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염마는 코마치를 뱃사공 외에 다른 자리에 앉히지 않을 것이다. 코마치는 단순히 천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영혼을 거두어가는 일보다 뱃사공 일에 훨씬 만족한다는 것을 염마는 안다.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도, 힘겹게 쌓아 올린 돌탑이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더라도, 코마치는 그런 유령들의 한을 풀어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해는 저물고, 노를 젓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져 갔다. 그 작은 목소리에도 코마치는 마지막까지 귀를 기울여 그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사신이 하는 일이란, 그토록 의미 없고도 아름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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