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새벽은 유난히 해가 늦게 떴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에 세상이 밝게 비춰지고 있을 시간인데도 주변은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주변은 사람 이야기 소리 하나 없고 이따금씩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뿐만이 전부였다. 인기척이라곤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하쿠레이 신사도 마찬가지.
지난밤 늦게까지 연회를 즐긴 인요들은 다같이 신사 앞마당에 드러누워 아직까지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널부러진 술병, 먹다 남긴 음식, 전부 불타고 남은 모닥불의 재.
또각.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그 돌계단과 부딪히는 발걸음 소리는 틀림없이 신사를 향한 계단을 오르는 소리였다. 귀가 밝은 걸까. 아니면 무녀로서의 감일까. 모두가 잠든 난장판 속에서 레이무가 제일 먼저 눈을 떴다.
“으응…”
밤 사이 내내 이어져온 잠기운과 술기운에 레이무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누구지…? 이 시간에…”
“으읏…”
레이무가 일어난 탓일까. 레이무의 바로 옆에 쓰러져있던 마리사도 곧이어 머리를 쥐어싸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야야. 어제 너무 마셨나…”
“쉿. 마리사. 누가 오고있어.”
또각. 또각.
걸음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갔다. 레이무와 마리사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오는 신사의 토리이의 방향으로 향했다. 그 너머 아래에서, 누군가 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온 참배객 아니야?”
“참배객? 이 시간에?”
“뭐, 때로는 부지런한 사람도 있더라구.”
“그런가…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손님이라면 얼른 맞이해야지.”
레이무는 잠결이 달아나도록 자신의 두 뺨을 탁탁 치고는 서둘러 토리이를 향해 다가갔다.
또각. 또각. 또각.
걸음 소리와 함께 동이 트고 한 줄기 빛이 세상을 비췄다. 지평선 너머로부터 뻗어져나온 빛은 토리이를 넘어 그 앞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발소리는 멈추었다. 계단을 전부 올라온 발소리의 주인, 아침부터 신사에 찾아온 첫 손님을 향해, 레이무는 양손을 맞대며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이렇게 이른 아침…”
그리고, 레이무의 표정은 하얗게 굳었다.
레이무의 앞에 서있는 것. 그것은, 적어도 참배객은 아니었다. 아니, 참배객이 아닌 것은 물론,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외형이었다. 하지만 그저 인간이 아닌 것들은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당장 뒤에 널부러져 있는 것들만 본다 하더라도 인간이 아닌 것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흡혈귀, 망령, 오니, 텐구…
하지만 ‘그것’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인간도, 요괴도 아닌 무언가의 모습. 그 모습은 마치…
“예쁘다…”
옆에 있던 마리사가 내뱉은 말이었다.
“...”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 이후론 모두가 말이 없었다. 계단을 올라 신사에 찾아온 ‘그것’도. 그것을 눈앞에 마주한 레이무도.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해도 그것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던 마리사조차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리사는 오직, 레이무의 모습만을 바라보았다.
“레… 레이무…?”
레이무의 상태가 이상했다. 아니, 이상하다기 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마리사가 보는 한, 레이무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은 커다란 일을 마주했을 때의 긴장감도, 이변을 해결해야 한다는 무녀로서의 책임감도 아니었다.
살기. 눈앞의 적을 해치워야만 한다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살기였다.
“레이무…? 왜 그래…?”
마리사는 레이무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레이무에게 손을 뻗었다. 그 때,
“오랜만이야.”
‘그것’이 말을 꺼냈다. 마리사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며 그것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놀란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그저 그 목소리가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니 그녀는, 무척이나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그녀는 연회 끝에 쓰러져있는 요괴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이무를 보며,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많이 늘었구나.”
“뭐하러 온 거야.”
그녀와 정반대로, 레이무는 마치 칼날이라도 삼킨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매서운 눈빛, 명백히 드러내는 적대감.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떨리는 목소리.
적막감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말했다.
“너희를 구원해주기 위해서.”
“웃기지마!”
레이무는 품속에서 음양옥을 꺼내들었다. 레이무가 꺼낸 여러개의 음양옥은 알록달록한 빛을 발하며 그녀의 주변을 둘러쌌다. 그리고 이내, 음양옥은 한순간에 일제히 그녀의 몸을 덮쳤다.
섬광. 어두운 새벽을 환하게 비추는 빛. 신사의 끝자락 토리이에서 음양옥은 연속해서 빛을 뿜어댔다.
그 빛과 굉음 탓일까. 밤늦은 연회에 쓰러져있던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뭐… 뭐야…?”
막 잠에서 깨어난 이들 모두가 레이무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뒷모습 뿐이었지만, 그 덕에 레이무가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 상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레이무의 공격에 의한 빛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그 대신 하늘에서 내려온 햇빛이 그녀를 비췄다.
순백의 날개. 눈앞을 가득 뒤덮을 정도로 커다란 3쌍의 날개. 하얗게 찰랑이는 머릿결. 정결하게 흩날리는 옷깃.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나 아름답고 빛나는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은, 레이무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고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이무는 말했다.
“어째서…”
그녀는 자신의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그리곤 상처 하나 없는 자신의 몸에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등을 돌려 다시 토리이의 계단 쪽으로 향했다. 다만 고개만은 레이무에게로, 레이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대해. 곧, 모두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테니.”
또각. 또각. 또각.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만 몇 번을 울린 채, 그녀는 계단 밑으로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정적이 흘렀다.
레이무는 그녀를 쫓지 않았다. 그저 두 주먹만을 꽉 쥔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고요한 침묵. 모두의 집중된 시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마리사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녀석은 대체 뭐였는데?”
“...”
“뭐였냐구??”
마리사는 레이무를 붙잡고 재촉하듯 물었다. 마리사의 물음에, 레이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그리고, 거기에 있는 모두가 그 말을 들었다.
“첫 이변 해결 상대야.”
“레이무~ 나와보라구~”
마리사가 신사의 문을 쾅쾅 두드리며 말했다. 신사의 낡은 문에 잠금장치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레이무가 결계를 만들고 안에 들어간 탓에 레이무 외에 다른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완고한 결계는 아니었기에 부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안에 들어가기 전 레이무의 싸늘한 분위기 탓에 영 힘으로 밀고 들어갈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레이무. 실망이네.”
열심히 문을 두드리는 마리사의 옆에서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레밀리아가 말했다.
“뭐가?”
“아까 못들었어? 첫 이변 상대라잖아. 첫 상대는 나인줄 알았는데.”
레밀리아는 삐졌다는 듯이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레밀리아의 아가씨같은 도도한 질투에 마리사는 어이없다는듯 표정을 구겼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그럴지도.”
“뭐, 나도 의외긴 해.”
레밀리아의 뒤에서 양산을 씌워주고 있는 사쿠야가 말했다.
레이무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버린 탓에 연회의 뒷정리는 모두 사쿠야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런 일쯤은 이미 완벽하게 끝낸 뒤였다.
“무녀는 요괴 퇴치가 일이니까. 레이무 정도의 무녀라면 설령 우리가 아니라도 첫 상대는 강한 요괴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모습은…”
“천사같았죠? 아무리 봐도.”
사쿠야의 말을 끊고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샤메이마루 아야가 말했다. 사쿠야는 얼굴을 찡그렸고, 마리사 역시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안 갔냐?”
“에헤이~ 그런 말을 들었는데 기자인 어떻게 제가 어떻게 먼저 가버리나요. 하쿠레이 무녀의 첫 이변 해결이라니. 신문 소재로서 놓칠 수 없는 이야기죠.”
“인터뷰는 무리일 것 같지만 말이지.”
마리사는 방 안에 콱 틀어박혀있는 레이무를 보며 말했다.
“왜 저러는 걸까 레이무. 그 녀석을 본 순간부터 안색이 확 바뀌어선…”
마리사를 포함한 네명 모두가 신사의 문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모두가 레이무의 그런 모습은 낯설었기 때문에 누구도 선뜻 어떻게 해야할지 말을 내놓기가 어려웠다. 그때.
“흐아아아아아아암~”
괴상한 하품소리. 그 소리에 문앞에 기다리던 모두가 소리가 난 쪽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엔, 술에 찌들은 채로 막 잠에서 깬 오니 하나가 있었다.
“음냐. 잘 잤다.”
스이카는 졸린 눈을 뻐끔거리며 말했다. 잠결에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 반쯤 벗겨진듯 제대로 입지도 않은 윗옷. 그마저도 옷 안으로 손을 넣어 몸을 벅벅 긁고 있는 모습. 멀리서 보기만해도 술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쿠야. 청소할때 저건 왜 안치웠어?”
레밀리아가 스이카의 몰골을 보며 말했다.
“...쓰레기통에 안 들어갈거 같아서요.”
“뭐야? 너네들 아직도 하고있어?”
잠기운에서 깨어난 스이카가 마리사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안나온다구. 아무리 불러봐도 반응도 없구.”
마리사는 굳게 닫힌 신사의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안에 보기는 그른 것 같네요. 대답도 없어요.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헤에~ 그렇단 말이지.”
아야의 말에 스이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까딱거리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어깨를 빙빙 돌리며 신사의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비켜봐. 내가 나오게 해줄테니까.”
이윽고 문앞까지 다가간 스이카는 그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팔 한쪽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어, 어이 스이카.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맞는거 같은데요.”
스이카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을 본 네 명 모두가 쏜살같이 문앞에서 도망치듯 떨어졌다. 그리고 스이카는, 그대로 전력으로 신사의 문을 향해 돌진했다.
“레이무우우우우! 나와라아아아!!”
콰앙! 내지르는 주먹과 동시에 신사의 문은 단번에 박살났다. 문만 부서지면 다행이랴. 오니의 괴물같은 힘에 문과 함께 그 주변의 벽과 기둥까지도 전부 찌그러졌다. 사방으로 파편이 튀고, 찌그러진 기둥과 함께 신사의 지붕이 반쯤 옆으로 기울었다.
“윽.”
“이제 어쩌냐.”
“쟨 이제 죽었다.”
신사의 꼴을 본 모두 스이카를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이카는 난장판이 된 신사의 방 안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레이무~”
스이카는 방 안을 둘러보며 레이무를 부르며 말했다.
“얼른 나와 놀아야지. 전에 나랑 약속한거 잊었… 어라?”
하지만, 스이카는 주변을 몇번 두리번거리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일 뿐이었다. 그리고 뒤따라 방안을 들여다본 모두도 다 스이카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방 안을 몇번 두리번거리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방 안에, 당연히 있어야 할 레이무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갑자기 부르다니 놀랐어.”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나가는 레이무의 옆에서 목소리가 말했다.
“놀라다니, 당연한거잖아?”
그 목소리에게로, 레이무는 말했다.
“그 녀석이 나타났으니까. 당장 대책을 세워야지.”
“후훗. 그렇지.”
목소리는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염하면서도 신비로운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 야쿠모 유카리는 말했다.
“평소랑 달리 왠일로 열심히네.”
“뭐어~?”
유카리의 말에 레이무는 잔뜩 화를 내는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엔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건가. 아니, 지금은 그런 사소한 걸로 화낼 때가 아니었다. 레이무는 금세 다시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달라야지. 평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니까. 그 녀석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너도 알잖아?”
“뭐… 하긴 그렇지.”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듯, 유카리 역시 레이무와 마찬가지로 금세 얼굴에 웃음기를 없앴다. 그리고, 유카리는 예전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땐 정말 위험했으니까. 그녀가 처음 나타났을때, 분명 우리들도 막아보려고 했어. 하지만 전부 실패했지. 그녀는 상상 이상으로 강했고, 아무도 이길 수 없었어. 우리들 전부가 힘을 합쳤는데도… 그야말로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적이었지.”
그리고, 유카리는 레이무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넌 이겼었잖아?”
“...”
레이무는 말이 없었다. 유카리의 말을 무시한 채로, 계속해서 앞만 보고 걸어나갔다.
아니. 아니었다. 이긴 것은 레이무가 아니었다. 그건 레이무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직접 싸워본 레이무는 알고 있었다. 그 천사의 강함을. 아무리 공격을 해 보아도, 아무리 강한 살상력을 가진 부적을 날려 보아도, 천사에겐 그런 공격 따윈 전혀 통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때에 유일하게 천사의 몸에 상처를 입힌 것이 바로 하쿠레이 무녀들만이 다룰 수 있는 음양옥. 그 무기만큼은 천사의 날개를 찢고, 땅에 떨어뜨려, 그토록 강한 힘을 봉인시킬 수 있었다. 레이무는 그저 음양옥을 갖고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일 뿐. 전부 음양옥이 가진 힘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엔 그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음양옥에 대해 어디까지 알아?”
레이무가 유카리에게 물었다.
“글쎄. 전부일 수도 있고, 극히 일부일 수도 있지. 어떨 거 같애?”
“똑바로 말해.”
“실은… 전혀 몰라. 만든 건 내가 아니니까.”
레이무는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저 전달해줄 뿐이야. 하쿠레이의 무녀를 맡은 인간에게로. 지금은 그게 너인거고.”
“그래… 그러니 직접 만든 사람을 만나야만 해. 그걸 위해서 이렇게 더럽고 습하고 벌레들이 득실대는 곳까지 온거니까.”
레이무는 들고 있던 횃불로 주변을 한번 휙 비춰보았다. 횃불의 빛이 닿자 그곳에 있던 지네 몇 마리가 재빨리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깊은 동굴 속이지만, 횃불과 동굴 벽 곳곳에 박힌 밝은 광물 덕분에 걸어다니지 못할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정말 이런 곳에 음양옥의 신이 있는거야?”
유카리가 약간의 불쾌감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해. 지난번에 왔을 때도 만났었으니까.”
“바닥에 벌레들이 많아서 기분 나쁜데.”
“넌 어차피 바닥을 밟지도 않잖아.”
레이무는 스키마 속에 몸을 숨기고 둥둥 떠다니는 유카리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징그럽잖니.”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그 녀석이라면, 분명 뭔가 알고 있을테니까.”
“흐~음.”
유카리는 바닥의 벌레들을 한번 슥 보더니 이어 동굴의 벽과 천장을 한번씩 훑어보았다. 희미한 빛 탓에 더욱 기괴하게 보이는 동굴 벽들. 안락함이라곤 쥐꼬리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어둡고 습한 분위기. 도대체 어떤 신이길래 이런 기분 나쁜 동굴 속에 틀어박혀 사는 걸까. 유카리는 혼자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거 참 취향 한번 이상한 신이네.”
“엇. 발견.”
레이무가 걸음을 멈춰서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공중에 떠다니며 이동하던 유카리의 스키마도 제자리에 멈춰섰다.
자리에 멈춰선 두 사람의 눈앞엔 알록달록한 음양옥들이 바닥에 가득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음양옥들 중에서도 특히 커다란 음양옥. 마치 거대한 공같은 음양옥 위에 누군가 올라타 있었다. 동굴 벽에 있는 광물들을 작업하고 있었던 걸까. 뒤늦게 두 사람의 기척을 알아챈 그녀는 늦게나마 작업용 고글을 벗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 당신들은…”
완전히 뒤를 돌아본 음양옥의 신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보였다. 정신 사나울 정도로 알록달록한 색채의 곡옥,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패션의 옷차림. 그것도 커다란 음양옥 위에 당당하게 올라서있기까지한 모습. 그 괴상한 모습을 올려다보며 유카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진짜 이상한 신이네.”
“어이, 거기 너.”
레이무가 들고 있던 횃불로 가리키며 말했다.
“음양옥을 만든게 너지?”
레이무의 물음에, 음양옥의 신 미스마루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그렇죠.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미스마루의 물음에 레이무는 즉시 옷 속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꺼낸 그것을 미스마루에게 휙 던졌다. 미스마루는 곧바로 자신이 건네받은 그것을 슥 한번 훑어보며 말했다.
“이건…”
“하쿠레이 무녀에게만 전해지는 특별한 음양옥이야.”
“호오…”
미스마루는 호기심이 생긴 듯 턱을 쓰다듬으며 음양옥을 바라보았다.
“그 음양옥의 비밀을 파헤쳐 주었으면 해. 분명 뭔가가 있을 테니까.”
미스마루는 음양옥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았다. 톡톡 두들겨 보기도 하고, 이곳저곳을 건드려 보기도 하면서, 레이무가 건넨 음양옥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내 첫 이변 상대인 녀석을 그 음양옥의 힘으로 봉인했어. 그때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이변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다 그 음양옥의 힘이야. 그러니까 그 힘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음양옥의 비밀을 파헤쳐줘. 분명 그것엔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을 거…”
“음양옥에게 그런 능력은 없어요.”
레이무는 할 말을 잃고 두 눈을 깜빡거렸다.
“...뭐?”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에요 음양옥은. 이 음양옥도 마찬가지. 그런 특별한 힘 같은건 없어요.”
미스마루는 받았던 음양옥을 다시 레이무에게로 휙 던져주며 말했다. 던져진 음양옥은 그대로 레이무에게 날아가 두 손으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미스마루의 말에 받은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건지, 레이무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음양옥을 허탈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레이무는 간절한 표정으로 미스마루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분명… 그때 나한테 힘을 줬었어.”
“힘?”
레이무는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나를 대신해 천사를 봉인해 줬었어.”
레이무의 말에 미스마루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오히려 음양옥때보다 더 호기심을 가지며 말했다.
“천사라면…?”
미스마루의 반응에 레이무는 고개를 더 바짝 내밀며 말했다.
“천사에 대해 알아?”
레이무의 물음에 미스마루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알 수 밖에요. 천사란 신들과 상당히 비슷하니까요.”
“그럼, 그 녀석을 이길 방법도…!”
“천사는 신의 사자. 기본적으로 저희 신들과 같답니다. 신들이 신앙을 먹고 자라듯, 천사 역시도 그 기도를 듣고 살죠. 당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에요.”
“...”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힘을 잃어 약해지고, 사람들이 간절히 원할수록 그 힘은 더욱 강해지죠. 그것이 천사의 본질.
무슨 생각인건진 모르겠지만, 만약 천사를 봉인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에요. 그 천사가 강한 힘을 가졌다면, 분명 그녀가 하는 일은 모두가 바라는 일이에요.”
“그럴 리 없잖아!!”
버럭, 갑자기 내지르는 소리에 미스마루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미스마루는 당황한듯 레이무를 내려다보았다. 레이무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그 이후로도 동굴 속에서 몇번이고 울려퍼졌다.
“그 녀석이… 그 녀석이 하는 짓을 기뻐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아무도 말이 없었다. 작은 소리도 크게 울리는 동굴 속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졌다. 레이무는 두 주먹을 꽉 쥐고는 떨고 있었다. 그런 레이무를 보며, 미스마루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이 있었군요.”
레이무는 말이 없었다. 옆에 있는 유카리도, 레이무의 눈치를 보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됐어. 도움 줄 생각이 없다면 나 혼자 해결하겠어.”
그렇게 말하며 레이무는 뒤를 돌아 동굴의 출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한눈에 봐도 감정이 상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발걸음. 유카리와 미스마루는 그런 레이무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레이무가 두 사람으로부터 제법 멀리 떨어졌을 때였다.
“잠깐.”
동굴 속에 울리는 미스마루의 부름에 레이무의 걸음이 멈춰섰다.
“음양옥이 가진 힘을 알고 싶다고 했죠?”
레이무는 천천히 고개를 뒤를 돌아보았다. 분노, 그리고 슬픔까지 담겨있는 표정.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스마루의 말에선 희망을 찾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런 레이무를 보며, 미스마루는 입가에 미소를 띄며 말했다.
“딱 한 가지 있어요. 그 음양옥에만 깃들어 있는, ‘특별한 능력’이.”
“나 참. 너 때문이잖아.”
“뭐가?”
“갑자기 그렇게 주먹을 날려대니까 그렇지. 분명 레이무가 깜짝 놀라서 사라져버린 거라구.”
마리사는 뿅 하고 레이무가 사라지는 듯한 손짓을 하며 말했다.
“흥. 말도 안되는 소릴.”
마리사의 말이 어이 없다는 듯, 스이카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갔다.
“하여간, 오니란 종족은 영 고귀한 종족은 못 되네. 흡혈귀의 급에 따라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
“뭐?”
앞서가던 스이카가 뒤따라오던 레밀리아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맞잖아? 그렇게 무식하게 때려 부술 생각만 하다니. 좀 더 품위를 갖출 생각은 안하는거야?”
레밀리아는 우아한척 머리를 한번 튕기며 말했다.
“뭐라는거야? 약해빠진 놈이. 그런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녀석들이나 하는 소리지.”
“뭐야!?”
레밀리아가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왜! 틀린말 했냐? 오니보다 약한 흡혈귀!”
“이게…!”
두 사람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으르렁거렸다.
“자자. 싸움은 그만두고. 너네가 무슨 어린애냐?”
마리사가 두 사람을 강제로 떨어뜨려놓으며 말했다. 마리사는 스이카의 팔을 잡은채 질질 끌고갔고, 사쿠야 역시 난동부리는 레밀리아를 꼭 붙잡고 진정시켰다.
“칫. 기분만 망쳤네.”
스이카는 팍 하고 팔에서 마리사의 손을 떨쳐냈다. 그리고 인상을 잔뜩 구기고는 다시 갈길을 걸어갔다.
“야 스이카. 어디가?”
“레이무 찾으러.”
스이카는 뒤도 안돌아보고 무심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
“아, 저도 같이 가시죠. 안그래도 인터뷰를 해야 하니까.”
아야가 스이카의 옆으로 따라붙으며 말했다.
“아니면, 그 천사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인터뷰 대상으론 레이무씨 만큼이나 좋을테니까. 다시 올 것 같았는데 금방 나타나주진 않으려나.”
그때였다. 거대한 천둥소리가 하늘 전체에 울려퍼졌다. 귀가 찢어질듯한 커다란 천둥소리. 그 소리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곧장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뭐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점차 하늘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검은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와 하늘을 뒤덮었고, 짙게 물든 하늘은 어느새 빛 한줄기 없는 어둠으로 가득 채워졌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암흑. 어둠으로 뒤덮인 세계.
낮인데도, 마치 밤처럼이나 어두워졌다.
“너냐?”
마리사가 레밀리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
“또 햇빛 가리겠다고 무슨 짓 한거지?”
마리사가 손가락으로 레밀리아의 볼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아냐! 내가 뭘!”
레밀리아가 성질을 내며 말했다.
“또 그런짓 했다간 레이무가 가만 안둔다.”
“난 아무짓도 안했다니까!”
“아가씨의 짓일 리는 없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에게 옆에 있던 사쿠야가 끼어들며 말했다.
“이렇게 환상향 전체를 뒤덮으려면 시간과 마력이 많이 필요하니까. 그때도 파츄리님이 안개를 만들고, 내가 안개의 시간을 가속시켜 환상향 전체로 퍼지게 했지. 아가씨께선 지시만 했지, 실제로 하신 건 아무것도 없어.”
사쿠야의 말에 레밀리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말했다.
“사쿠야. 너어…”
“어머. 죄송해요. 누명을 풀어드리려 그런건데.”
분해하는 레밀리아를 보며 마리사는 옆에서 쿡쿡대며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리사도, 사쿠야도, 레밀리아도, 모두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나칠 정도로 검은 하늘. 누가 보더라도 자연 현상이 아닌 누군가 인위적으로 일으킨 일이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홍마관의 실력자들이 힘을 합쳐도 며칠이나 걸릴 일을 이렇게 간단하게 해낸단 말인가.
“그럼, 이건 대체 누가…”
마리사는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때…
“앗. 저건…!”
아야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은 그곳으로 쏠렸다.
한 줄기의 빛. 저 멀리, 검은 구름의 틈새 속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의 줄기 속에서, 누군가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커다란 6개의 날개. 그 아름다운 자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받으며 내려오는 모습. 그 모습은 마치 세상을 구원하러 오는 천사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가 넋을 잃은듯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사 역시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뜨고는 지상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오! 나타났네요. 나타나주길 바란다면 정말로 나타나주는 걸까요? 역시 천사님.”
아야는 재빨리 인터뷰용 기자 수첩과 펜을 꺼내들며 말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는 땅에 발을 붙였다. 그와 동시에 유일하게 비춰지던 한 줄기 빛은 사라지고, 세상은 더욱 어둡게 물들어갔다. 땅에 내려앉은 천사는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곤 그들을 향해, 마리사와 모두의 머리 위를 향해, 검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직, 일순간 먹구름 속에 전류가 맴돌았다. 천사의 손짓에 검은 구름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조금씩, 그 안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구름을 뚫고 나왔다.
“저건…”
그것은… ‘눈동자’였다. 검은 구름을 뚫고 나온 그것은 하늘을 전부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눈동자. 아직 뜨이지 않은 5개의 눈동자가, 마치 세상을 내려다보듯 하늘에 박혀 있었다.
“저게… 뭐지?”
“왠지 불길한데.”
마리사와 레밀리아, 그리고 사쿠야는 호기심을 품은 표정으로 그 눈동자들을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세 사람만뿐.
그들과는 다른 사람, 그것을 보고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스이카…?”
스이카는, 떨고 있었다. 마치 봐서는 안될 걸 봐버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평소 어떤 적을 만나든 가볍게 여기던 스이카가 진심으로 떨고 있는 모습. 그리고는 그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거’다…”
스이카는 뭔가에 홀린듯이 말했다.
“그거라니?”
“예… 틀림없네요.”
스이카의 옆에 있던 아야가 말했다. 아야 역시도 스이카 못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두 사람의 반응에 사쿠야가 물었다.
“그쪽이 환상향에 들어오기도 전의 일이에요. 언젠가 한번, 갑자기 환상향에 있던 모두가 동시에 죽는 사건이 있었죠. 인간, 요괴 할 것 없이 어느날 동시에 죽어버린 미제의 사건.
그리고, 그때도 이랬었죠.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 하늘을 뚫고 나온 정체불명의 눈동자. 감긴 눈동자는 하나씩 눈을 떴고, 그 눈이 전부 뜨이고는…”
“그리곤… 전부 죽었지.”
스이카는 나지막히 말했다. 그 목소리는, 심히 낮게 잠겨있었다.
모두가 스이카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스이카 혼자만이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요괴들이 죽었던가. 부하도, 그리고 동료도, 왜 죽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죽음. 피의 바다. 누가 누군지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의 산.
“그때 일어났던 일의 원흉이…”
스이카는 이를 빠득 갈며 천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 녀석이었냐…!”
분노가 가득 담긴 눈빛. 그와 동시에 스이카는 몸을 숙여 자신이 서있는 지면에 열 개의 손가락을 박아넣었다.
“어이 스이카. 뭘 하려는…”
“으랴아아아아아!”
땅이 울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이. 스이카의 손에서부터 뻗어져나가는 울림에 온 땅이 들썩였다. 지면이 쩌적 갈라지고, 그 위에 서있던 마리사를 포함한 모두가 놀라 허겁지겁 달아났다.
“어, 어이…! 스이카!”
“뭐 하는 거야! 저 망할 오니!”
이윽고 땅이 번쩍 들리며, 스이카의 손에 대지가 들려져 나왔다. 말 그대로 지면 그 자체를 잡아 뜯어내는 행위. 기어코 스이카는 잡아 뜯어낸 대지를 자신의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자신의 몸집의 10배는 되는 바위 덩어리를. 아니, 겨우 10배인가. 거의 100배는 가까이 되는 크기의 바위였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를 든 채로, 스이카는 눈을 부라리고 천사를 노려보았다.
천사는 그 자리에, 여전히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스이카의 엄청난 짓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모습은 대담하다 못해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스이카는 이를 더욱 악물었다. 분노하듯 양손에 힘을 가득 주었다. 그리고,
“스이카. 제발 진정…”
“죽어라아아아아아앗!!!”
그 거대한 바위를, 스이카는 온 힘을 다해 집어던졌다. 그만한 크기의 바위가 그 정도의 속도로 날아갈 수가 있는 건가. 마치 거대한 총알이 날아가는 듯한 속도로 바위는 천사에게로 날아갔다.
직격. 바위 덩어리는 볼것도 없이 천사에게 정면으로 직격했다. 바위는 그대로 천사를 깔아뭉갬과 동시에 땅에 충돌해 박살나며, 엄청난 굉음과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으으읏…!”
날아오는 파편과 폭풍처럼 몰아치는 충격파에 다른 이들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땅이 울리고, 충격이 사방으로 퍼지고, 오히려 공격을 한쪽에 있던 이들이 파편 덩어리에 맞아 다칠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의 공격. 파편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인 크기. 하물며 그 커다란걸 직접 맞은 상대가 어떨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충돌에 의한 후폭풍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주변은 자욱한 흙먼지의 안개로 가득 끼었다. 모두는 살며시 고개를 들고 천사가 있던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그저 커다란 바위가 땅에 쳐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 밑에 깔린 건… 이미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할 것이었다.
“아~ 아~ 분명 죽었네요 저건.”
눈앞의 처참한 광경을 보며 아야는 말했다. 그리고, 아야는 거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좋은 인터뷰 대상이었는데.”
아야는 더 볼것도 없다는 듯 인터뷰용 펜과 수첩을 품 안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곤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아쉬운듯, 발걸음을 떼고 그곳을 떠나려는 순간…
또각.
발걸음 소리. 그것은 이미 등을 돌린 아야의 귀에 들려온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틀림없이 스이카가 던진 바위가 있는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야는 물론, 그곳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리고, 스이카는 다른 누구보다도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뭐야?”
또각. 또각.
연기와 흙먼지가 자욱한 그곳 속에서, 누군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무언가의 형체. 그리고 연기 밖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그 누구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는 천사의 모습. 심지어는 몸도, 옷도, 그 커다란 날개도,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있을 수 없는 광경을 보며, 마리사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멀쩡한거지?”
“못 맞춘 거 아냐?”
레밀리아가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저렇게 큰게 빗나갈 리가 있겠냐? 분명 무슨 수를 쓴 거겠지.”
마리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레밀리아의 도발에도 스이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이카의 분노의 대상은 오로지 천사만을 향해 있었다.
“저 자식이…!”
“자, 잠깐 스이카! 진정!”
또다시 땅을 들어올리려는 스이카를 막아세우며 마리사가 말했다.
“내가 가볼테니까 섣부른 짓좀 하지 말라구!”
그렇게 말하며 마리사는 잽싸게 빗자루 위로 올라탔다. 스이카의 앞을 가로막듯 빗자루에 올라탄 마리사는 그대로 최대 속력으로 발진해 천사에게로 날아갔다.
천사의 앞까지 잽싸게 날아온 마리사는 빗자루의 속도를 늦추고 그 앞에 내려앉았다. 천사 역시도 마리사가 시야에 들어오자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 눈빛으로 마리사를 바라보았다.
“어이! 거기 천사같이 생긴 아가씨. 잠깐 시간 좀 될까?”
천사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평온한 모습. 그 눈빛만이 마리사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 마치 조각상과도 같이 완벽한 이목구비. 생명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갑고도 아름다운 모습. 그녀는 그 눈으로 마리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마리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살짝 움츠렸다. 그리고 자신이 움츠려 들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걸까. 이내 마리사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물어볼 건 두 가지!”
마리사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곤 곧바로 두 손가락을 접고 다시 한개의 손가락만을 세워올리며 말했다.
“첫째. 스이카가 한 말이 사실이냐? 과거 수많은 인요들이 몰살당한 일. 그건 전부 네가 한 짓이냐?”
천사는 여전히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로 마리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스이카가 누군지 모르고, 또 스이카가 한 말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수많은 학살을 저지른 적이 있다면 지금 마리사가 하는 말을 모르지는 않을 터. 천사는 입을 열고는, 마리사의 물음에 사실대로 답했다.
“그랬지.”
정적이 흘렀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차분하게 대답한 말에 마리사는 뭐라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마리사는 천사에게 무언가 따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두번째 손가락을 폈다.
“그럼 둘째. 저기 있는 저 눈동자의 눈이 전부 뜨이면, 그땐… 우리도 똑같이 죽는 거냐?”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천사는 고개를 들어 검은 하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마리사에게로 눈을 마주치고는… 이번에도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지.”
샤샥.
천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른 4명이 순식간에 천사의 주변을 둘러쌌다. 마치 포위망을 짜듯이, 마리사를 포함한 5명의 인요가 일정 거리를 두고 천사를 둘러 싸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그냥은 못 넘어가겠는데요. 방금 그 발언.”
사쿠야가 손에 든 칼날을 번뜩이며 말했다.
“난 애초에 넘어갈 생각 없었어.”
스이카 역시 천사를 보고 이를 갈며 말했다.
어느새, 모두가 무기를 꺼내들고 있었다. 마리사는 팔괘로를, 사쿠야는 나이프를, 아야는 텐구의 부채를, 레밀리아는 손끝에 모여지는 붉은 힘을 모아 자기 키보다 커다란 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스이카는, 자신의 분노 만큼이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꽉 쥔 주먹은 그 분노를 양분삼듯 타오르는 불꽃을 휘감고 있었다.
“움직이면, 즉시 쏜다.”
마리사가 팔괘로를 조준하며 말했다. 마리사뿐만 아니라 다른 4명도. 모두가 천사를 위협적인 존재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냥 둬선 안됀다. 절대로 멋대로 하게 둬선 안된다. 5명 모두가 그런 생각으로 천사를 겨냥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사는 위협 따윈 전혀 느끼지 않았다. 두 팔은 여전히 아래로 내려놓고 있었고, 심지어는 자신을 공격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 하늘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모습.
천사는 그들을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기어코, 천사는 나아가기 위해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 한발짝을 앞으로 뻗은 순간,
“죽어라아아아앗!!”
스이카의 외침에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마리사의 마포, 스이카의 불주먹, 아야의 바람 칼날, 사쿠야의 나이프, 그리고 레밀리아의 창. 일제히 모든 공격이 천사의 몸을 덮쳤다. 동시에 연속적으로 퍼부어지는 공격에 주변은 순식간에 폭발과 연기에 가득 뒤덮였다. 환상향에서도 강자들이라 불리는 5명의 총 공격. 이 정도 공격이라면 그 누구라도 무사히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사이…
슈욱.
퍽.
무언가가 날아와 스이카와 마리사, 두 사람의 사이에 꽂혔다. 그리고, 재빨리 그것에게로 시선을 돌린 두 사람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뾰족한 형태. 붉디 붉은 색깔. 그리고 끝부분에 그려진 흡혈귀의 문양…
틀림없는 레밀리아의 창이었다.
“뭣?”
스이카와 마리사가 서로를 보며 당황하던 사이,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시에 수 없이 날아오는 은빛의 나이프가 아야를 덮쳤다. 아야는 급히 방어 태세를 취하고 몸을 움직여 나이프를 피했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은 탓에, 미처 피하지 못한 나이프 하나가 그녀의 팔꿈치 근처에 박혔다.
“읏…!”
휘몰아치는 바람의 칼날이 사쿠야를 덮쳤다. 공기를 가르는 마찰음을 내는 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사쿠야에게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내, 바람의 칼날은 사쿠야의 뒤에 있던 나무를 말끔하게 절단하여 베어버렸다. 사쿠야에게 상처는 없었지만, 만약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없었다면 잘린 것은 틀림없이 나무가 아닌 사쿠야의 몸뚱아리였다.
“이건…”
마포와 불꽃. 양쪽에서 날아오는 마리사의 마포와 스이카의 불꽃이 레밀리아를 덮쳤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그 열기를 마주한 레밀리아는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몸을 웅크렸다. 그런게 방어에 큰 도움이 될 리는 없었지만, 작은 몸집 덕분에 우연히 두 공격 사이에 딱 들어간 레밀리아는 그 불길과 광선이 전부 지나갈때까지 몸을 쭈그리고 있었다.
“으으윽…! 뭐야뭐야!!”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불길과 광선은 더 이상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레밀리아는 고개를 빼꼼 들어올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자신의 안전이 확보됐다고 생각한 레밀리아는 그대로 튀어오르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뭐야 마리사! 그리고 오니! 왜 날 공격하는 거야! 똑바로 안해?”
두 사람의 공격 탓에 양쪽 날개 끄트머리가 검게 그을린 레밀리아가 화를 내며 말했다.
“뭐? 너나 제대로 하시지.”
“그래! 네 창에 내가 맞을 뻔 했잖아! 죽일 셈이냐?”
레밀리아의 말에 이번엔 스이카와 마리사가 동시에 소리쳤다. 셋이 동시에 으르렁거리던 사이, 이번엔 사쿠야가 말했다.
“죽을 뻔한건 이쪽도 마찬가진데. 방금 그쪽 공격이 내쪽을 향해 날아왔다고. 무슨 속셈이야?”
“글쎄요. 그건 오히려 제가 할 소린데요. 나이프를 저한테 던지시다니.”
아야가 나이프가 박힌 자신의 팔을 보이며 말했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 모두가 천사를 공격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서로의 공격은 각자의 반대편에 있는 상대에게로 날아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됐지?”
연기 속의 한가운데. 모두의 시선은 그곳으로 향했다. 모두가 원래 공격했던 적. 모든 공격이 퍼부어진 곳.
이윽고 흙먼지가 걷히고, 그 속에서 조금씩 천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고운 피부. 찢어지거나 갈라지지 않은 옷, 기다란 머릿결, 그리고 새하얀 날개. 여전히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태 그대로의 모습. 공격을 받은 흔적 따윈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멀쩡한 천사의 모습에 그 모습을 본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고요한 정적. 누구 하나 질문에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눈치만 보고 있던 사이, 아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건 테스트 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그 말과 동시에 아야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천사의 새하얀 날개 주변으로 검은 깃털이 흩날리며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아야는 천사의 뒤를 노렸다. 천사를 노리며 자신의 왼쪽 팔에 박혀있던 나이프를 빼들었다.
날카로운 나이프의 칼끝이 천사의 뒤를 겨냥했다. 무방비한 뒷모습. 커다란 6개의 날개만이 그 뒤를 뒤덮고 있었을 뿐, 어떠한 방어 수단도 없었다. 그리고 그 뒤태를 향해, 아야는 나이프를 던졌다.
나이프는 빠르지 않은 속도로 날아갔다. 분명 텐구의 힘이라면 그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야는 그러지 않았다. 일부러 별로 빠르지 않은 속도로, 모두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힘을 조절해서 던졌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나이프는 천사에게로 날아가 그대로 그 등에 꽂혔다. 그리고…
“말도 안돼…”
아니, 꽂히지 않았다. 분명 천사의 등에 박혔어야 할 나이프는 그대로 몸을 통과해 천사의 가슴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치 허상, 신기루를 공격한 것처럼. 실체가 없는 것을 공격한 것처럼 나이프는 그대로 천사의 몸을 통과해 빠져나왔다.
이윽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꽂힌 나이프를 보고는, 모두가 넋을 잃은 듯 땅에 박힌 나이프를 바라볼 뿐이었다.
“...”
“그런…”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고?”
그곳에 있는 5명 모두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지금 자신들은, 터무니없는 적을 눈앞에 마주했다는 것을.
“오늘부터는 네가 하쿠레이 무녀야.”
식탁 위, 갈라진 틈새에서 나온 손이 그 위에 음양옥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틈새의 손은 금방 사라졌고, 홀로 남은 레이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직 어린 레이무는, 식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없이 음양옥을 바라보았다. 음양옥에는, 피를 닦아낸 흔적이 있었다. 그 피가 누구의 피인지 레이무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젯밤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뒤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한 사람. 금방 돌아올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그 사람. 그 사람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뜬눈으로 밤을 샌 레이무에게 돌아온 것은 조금 전 틈새요괴가 건넨 한마디 뿐이었다.
레이무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정확한 감이 싫었다. 자신이 그렇게 느껴버렸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테니까. 부정하고, 또 아무리 외면해 보아도, 레이무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아버렸다.
선대 무녀의 죽음. 그녀는 죽은 것이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언제까지고, 레이무는 홀로 남겨진 음양옥만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텅 빈 신사 안에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의 고요함. 허무함과 공허함만이 가득한,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
그 시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을까. 레이무는, 조심스레 떨리는 손을 들어 식탁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 작은 손으로, 식탁 위의 음양옥을 손에 쥐었다. 그녀가 남긴 음양옥을. 그녀의 피가 묻은 음양옥을. 음양옥을 손에 쥔 채로, 레이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무는 신사를 뛰쳐나와 어디론가 달려나갔다. 검은 하늘엔, 기괴할 정도로 부릅 뜬 다섯 개의 눈동자가 레이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녀는… 요괴를 퇴치하는 존재였다. 정확히는 요괴 뿐만이 아닌, 인간의 적을 해치우는 존재였다. 세상에는 인간을 위협하는 적이 너무도 많았기에, 인간들은 언제나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도했다.
죽여달라고. 그들을 죽여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그것이 언제나 무녀가 듣는 소원이었다.
무녀는 요괴를 죽인다. 그리고 요괴 역시 무녀를 죽인다. 하나의 죽음 뒤에 찾아오는 것은 언제나 또다른 죽음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요괴가 인간을 죽이면 인간은 요괴를 찾아내 죽인다. 분노한 요괴들은 얼마뒤 힘을 모아 인간들에게 더욱 많은 공격을 가한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인간의 죽음은 요괴를 향한 또다른 복수를 낳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복수. 빼앗긴 것에 대한 원망. 그것은 그들을 끝없는 싸움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고, 심장에 못을 박아넣고, 더욱 원망하고 증오하며, 그들은 싸웠다.
그것을, 그 오랜 증오심을, 이제와서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는가. 눈앞에서 가족과 동료들이 죽어간 그 분노를 어떻게 억누를 수 있겠는가. 아니, 되돌릴 수 없다. 되돌리기엔 너무나도 늦었다. 너무나 커져버린 증오심. 서로를 향한 끝없는 적대감. 오로지 서로를 죽이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관계.
그렇기에, 그들은 빌었다. 죽여달라고. 인간도, 요괴도, 어느새 모두가 빌고 있었다. 전부 죽여달라고! 서로를 죽이며,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모두가 간절히 외쳤다. 저 증오스러운 인간을, 저 증오스러운 요괴를, 이 세상에서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달라고!
그리고 그날,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다섯 개의 눈이 모두 뜬 밤. 숙청의 그날.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진 날.
…
가까스로 도착한 레이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멈추어섰다. 그리고, 레이무는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곳은 어둡고, 붉은 색으로 가득했다. 피의 웅덩이. 어린 레이무의 발목을 충분히 잠기게 하고도 남을 정도의 피가 웅덩이로 고여 있었다.
잘려진 팔, 다리, 살점, 그리고 시체.
전부, 죽어있었다. 인간도, 요괴도, 그곳에 살아있는 생명체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작은 움직임 조차도 없는 적막. 피의 웅덩이에 떠다니는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시체들. 고요하고, 어두운 침묵만이 그곳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레이무는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 무언가 있었다. 레이무의 걸음을 멈추게 한 그것이 여전히 눈앞에 있었다. 레이무는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직 한 사람. 모두가 죽어있는 그곳에 오직 한 사람. 누군가 홀로 서 있었다.
새하얀 날개.
어둠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자태.
이런 피웅덩이 속에서도 피 한방울 묻어있지 않는 순백의 모습.
그리고 ‘그것’이… 이내 서서히 레이무를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싸워왔던가. 수 천년간 이어져온 인간과 요괴의 싸움. 그리고 그 싸움은, 둘 중 누구의 승리도 아닌 채로 끝이 났다. 그야 레이무의 눈앞에 있는 ‘그것’은, 도륙난 시체들 위에 유일하게 서있는 ‘그것’은… 그 무엇도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눈동자가 레이무를 마주했다. 레이무의 눈동자 역시 그녀를 마주했다. 서로가 서로를 맞이한 눈빛 속에서, 레이무는 빨려 들어가듯 끝없이 그녀만을 바라보았다.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인 존재를.
수천 년 간의 싸움 끝에 홀로 서있는 존재를.
인간도, 요괴도 아닌,
단 한명의 천사를.
또각.
또 한 걸음, 발을 내딛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침묵 속에 그녀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천천히, 고요하게, 그녀는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모두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어이, 이대로 보고만 있을거야?”
마리사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어쩔건데.”
마리사의 물음에 스이카가 말했다. 하지만 스이카의 말에 마리사가 달리 할 말은 없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공격을 더 날려봤지만, 전부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모든 공격은 천사의 몸을 통과했고, 천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나갈 뿐이었다.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야…
“저 녀석, 눈동자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마리사가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위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불길한 기운으로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천사는, 더욱 더 불길한 발걸음으로 그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후후훗.”
갑자기 들려오는 고귀한 아가씨의 웃음소리. 그 소리에 마리사와 스이카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왜 웃는건데.”
마리사가 혼자 가만히 서서 웃고있는 레밀리아를 보며 말했다.
“웃기니까.”
“뭐가?”
“안 그래? 그동안 다들 멀리서 뭔가를 날려 대기만 하고, 아무도 직접 저 천사와 맞붙을 생각은 안 하잖아? 쏘는 공격이 안 통한다면 직접 맞붙어 싸우면 될 것을. 오니도 평소에는 힘자랑을 많이 하더만, 이럴땐 겁쟁이인가 보네.”
“...”
레밀리아는 스이카를 보며 말했다. 보통 레밀리아가 도발할때면 스이카는 항상 그에 맞서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스이카는, 레밀리아의 말에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웃긴 거. 저 녀석, 우리를 죽이겠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햇빛을 가려놓았어. 이 흡혈귀인 나를 상대로 말이야. 햇빛이 없는 곳에서 나와 싸워 이기려 하다니.”
그리고, 레밀리아는 웃으며 말했다.
“보여주겠어. 밤을 지배하는 건 천사가 아니라 악마라는 걸.”
그렇게 말한 레밀리아는, 어느새 순식간에 천사가 걸어가는 길 앞에 서있었다. 마치 그 길을 가로막듯이. 1대1 결투라도 신청하듯이. 천사와 악마가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곤 다가오는 천사를 마주하며, 레밀리아는 자신있게 두 날개를 넓게 폈다.
또각. 또각.
천사는 레밀리아를 마주한 채로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앞길을 가로막은 것이 신경쓰이지도 않는다는 듯,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걸어나갔다. 그런 천사를 보며, 레밀리아는 자신의 손톱을 날카롭게 내세웠다.
레밀리아의 주변으로 붉은 색의 요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피와 같은 색의 붉은 요기. 보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오싹해지게 만드는 강한 요기. 그것만큼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어린애같고 제멋대로지만 힘만큼은 확실하게 강한 힘. 최강의 요괴라 불리는 흡혈귀의 힘. 레밀리아는 두 다리를 박차고 천사를 향해 날아갔다. 쏘는 공격이 아닌 그 몸으로 직접.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며 손톱을 내세웠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이걸로 죽인다. 단 한번에. 레밀리아는 천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끝이 천사에게 닿고, 날카로운 손톱이 천사의 몸을 파고들었다. 악마의 손이, 천사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어?”
레밀리아는 그대로, 얼어붙은 듯이 두 눈을 깜빡였다.
천사의 몸에 닿은 레밀리아의 손이 사라졌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소멸. 심장을 관통한 손이, 몸에 닿는 순간 마치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레밀리아는 그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이 사라진 부분만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사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걸음을 걸어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이전과 똑같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럴수록 천사와 맞닿은 레밀리아의 팔은 점점 더 소멸해갔다.
“아아아악!”
“아가씨!”
레밀리아의 팔이 비틀리며 피가 뿜어져나왔다. 레밀리아는 재빨리 천사에게서 떨어져 자신의 팔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천사에게서 떨어졌음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천사에게 닿은 팔은 계속해서 파괴되며 소멸해갔다. 마치 죽음의 기운이 팔을 타고 올라오는 듯이. 그 팔이 전부 소멸하고 나면 그 다음은 몸통, 그리고는 머리였다. 아무리 흡혈귀라 할지라도 머리까지 전부 잃고 나면 더는 재생하지 못한다. 천사의 품에 닿았던 것만으로, 흡혈귀는 죽음을 맞이한다.
“레밀리아!”
마리사는 소리치며 레밀리아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마리사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천사의 앞에 있던 레밀리아는 어느새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천사 앞에 있었던 레밀리아는… 어느새 사쿠야의 품에 안겨있었다. 그리고 천사에게 닿았던 그 팔은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잘린 듯 말끔하게 절단되어 있었다.
“그래 사쿠야! 네가 시간을 멈춘 채로 저 녀석을 공격하면…”
“이미 해봤어!”
마리사의 말에 사쿠야는 버럭 소리지르며 말했다.
이미 해봤다. 그 말대로였다. 조금 전 시간을 멈춘 것은 찰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레밀리아를 팔을 절단한 뒤 사쿠야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나이프를 던져 천사를 공격했다. 하지만, 멈춰진 시간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날아간 나이프는 그대로 천사의 몸을 통과해 저 멀리까지 날아갈 뿐이었다. 이후 이어지는 가까이에서의 근접 공격도 마찬가지. 사쿠야는 곧바로 나이프를 손에 쥐고 노련한 암살자처럼 천사의 목을 베었지만 그 역시도 그저 허공을 가르듯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최강의 요괴의 일격도, 시간을 멈추는 능력도, 천사에게는 그 어떤 것으로도 상처 입힐 수 없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윽… 크흑…”
레밀리아는 잘려진 팔을 붙잡고 괴로워하며 신음했다. 사쿠야의 앞치마를 찢은 천조각이 상처 부위를 감싸고 있었음에도 흘러나오는 피를 완전히 멈추지는 못했다. 레밀리아의 팔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계속해서 흘러, 어느새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역시… 그렇게 되는건가.”
“...!!”
줄곧 가만히 있던 스이카가 레밀리아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사쿠야는 눈을 부라리곤 스이카를 노려보았다.
“무슨 소리지…? ‘역시’ 라니.”
사쿠야는 스이카에게 물었다. 아니, 단순히 물었다기 보다는, 거의 협박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그런 위압감이 담긴 목소리였다.
“저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거야? 딱 봐도 몸에 닿아선 안 될것 같은 불길한 기운. 내가 녀석을 건드리지 않은 건 그 때문이지. 겁쟁이니 뭐니 하길래 지켜봤더니만, 무작정 달려들더니 그런 꼴이기는.”
스이카는 비꼬듯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 말에, 사쿠야는 더욱 더 분노가 담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겨우 그딴것 때문에 아가씨를…!”
“멍청한 쪽이 잘못인거지.”
사쿠야는 즉시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천사를 공격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나이프를. 그 나이프는 전부, 스이카를 향하고 있었다.
“됐어 사쿠야.”
레밀리아는 한쪽 팔로 사쿠야를 막아세우며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고통에 힘겨워하는 모습으로 스이카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런 녀석이 하는 말… 들을 필요도 없어.”
“흥. 할 말이 없으니 그런 거겠지.”
스이카는 괴로워하는 레밀리아를 보며 말했다.
“안 그래? 어디 할 말 있으면 해보시지. 약한 흡혈귀!”
“그래… 말해줄까…?”
레밀리아는 남아있는 한쪽 팔로 땅을 짚었다. 그리곤 바짝 세운 손톱으로 땅에 긁으며, 그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스이카를 향해 포효하듯 소리쳤다.
“죽어!!!!”
레밀리아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분노와, 원망과 증오가 가득 담긴 목소리. 그 목소리에 답하기라도 하듯, 검은 하늘에 떠있는 다섯 개의 눈동자 중 하나가 눈을 떴다.
스이카는 주먹을 쥐었다. 당장이라도 레밀리아에게 달려들 듯 두 다리에 힘을 더했다. 그와 동시에 사쿠야 역시 들고 있던 나이프를 모조리 스이카를 향해 날렸다. 힘이라면 몰라도 속도라면 사쿠야의 나이프 쪽이 훨씬 빨랐다. 스이카의 주먹이 내지르기도 전에 이미 그 앞엔 나이프가 한가득 날아오고 있었다. 피하기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많은 수의 나이프. 너무나 빠른 나이프. 그리고 그 많은 나이프는 전부, 스이카의 앞에서 순식간에 튕겨나갔다.
“...”
사쿠야는 나이프를 튕겨낸 자를 바라보았다. 스이카의 앞, 그 앞에 나이프를 튕겨낸 자가 서있었다. 스이카보다 빠른 나이프를 하나도 남김없이 막아낸 속도. 마치 바람과 같이 빠른 움직임. 그 움직임의 주인인 아야가, 땅에 흩어진 나이프들의 중심에 서있었다.
“방해할 셈이라면… 너도 마찬가지야.”
사쿠야는 또다시 품에서 새로운 나이프를 꺼내 아야를 노려보며 말했다.
“방해? 뭔가 잘못 알고 있으신가 본데…”
그리고, 아야 역시 사쿠야를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은 저 천사를 막는 거에요. 방해를 하는 건 그쪽이라고요.”
“천사따윈 상관없어. 난 아가씨만 지킬 수 있으면 돼.”
사쿠야는 의지를 굳히듯 레밀리아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아야는 말했다.
“그렇겠죠… 당신들은 그날 그 자리에 없었으니. 그날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도 모르겠죠.”
그리고, 아야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친구도, 동료도, 이름을 모르는 자들도 수없이 죽었던 그날. 한번만 더 그날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들은 끝입니다. 당신들이라면 몰라도 우리 텐구들에겐 살아갈 조직이 필요하니까요. 다수가 죽으라는건 전부 죽으라는 말. 겨우 한 사람만을 지키겠다는 여유로운 말 따윈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야는 칼날보다 날카로운 바람을 만들어냈던 부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끝을 사쿠야에게로 향하며 말했다.
“방해꾼은 먼저 없애드리죠. 반격할 틈도 없이 빠르게.”
그에 맞서, 사쿠야 역시 나이프를 손에 들며 말했다.
“빨라? 암살로 나보다 빠르겠다고?”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 날카로운 눈빛,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 마치 그 눈처럼, 그 눈빛의 살기를 그대로 본뜨기라도 한 것처럼. 두번째, 세번째 눈동자가 하늘에서 눈을 떴다.
“어, 어이… 너희들…”
마리사가 모두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마리사의 목소리 따위가 들릴 리가 없었다. 이미 모두의 눈과 귀는 서로를 향하고만 있었다. 그 귀는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눈엔 오직 죽일 대상의 모습만이 비춰지고 있었다.
“어이, 비켜 텐구.”
스이카가 자신의 앞을 막고있는 아야를 보며 말했다.
“저 녀석들, 한꺼번에 날려버리게.”
스이카는, 이번엔 주먹을 쥐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활짝 펴고 손을 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바닥 안으로, 화염이 둥근 구의 형태로 모여들고 있었다. 스이카의 능력. 주변과 대지의 열기를 극한으로 끌어모은 오니의 화염. 처음엔 작은 불꽃이었던 그것은 갈수록 점점 더 커다란 구체로 크기를 키워갔다. 힘을 모을수록, 죽이겠다는 마음을 품을수록, 그것은 점점 더 크고 강하게 커져갔다. 그리고 그것이 커져갈수록, 하늘의 눈동자도 서서히 감은 눈을 들어올렸다. 감겨 있던 네 번째 눈동자, 그 눈동자가 하늘에서 눈을 떴다.
레밀리아는 창을 만들어냈다. 한쪽밖에 남지 않은 팔로 만들어낸 창을 짚고 일어나 그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스이카의 힘에 대항하기 위한 붉은 창. 천사를 공격했을 때보다 더욱 크고 날카로운 창을 들어 스이카를 향해 겨냥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협적인 크기. 모두를 위협하는 무기. 그 모습을 본 아야는 즉각 레밀리아에 대항해 부채를 들고 금방이라도 공격할듯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사쿠야 역시, 가지고 있는 나이프를 꺼내 최대한 많이 손에 집어들었다.
어느새, 모두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아야는 부채를, 사쿠야는 나이프를, 레밀리아는 붉은 창을, 스이카는 화염의 구를.
서로를 보며 마음 속으로 강하게 외쳤다.
죽어라. 죽어버려라.
그리고 그렇게 바랄수록, 레밀리아의 창과 스이카의 화염구는 점점 더 크기를 키워갔다. 살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상대방을 죽일 수 있도록. 그 위력은 서로를 향하여 더욱 강해져만 갔다.
서로에게 무기를 향하며 노려보는 긴장감. 숨막힐듯 정적인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깨고 제일 먼저 움직인 건 아야였다. 텐구의 속도로 움직인 아야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아야는 레밀리아를 향했다. 레밀리아의 창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막도록, 강한 위력의 공격을 하기 전에 빠른 스피드로 끝을 내도록. 움직인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야는 어느새 순식간에 레밀리아의 가까이로 접근해 있었다. 그리고,
“읏…!”
아야의 움직임은, 레밀리아에게 닿지도 못하고 저지당했다. 어느새 날개와 몸 곳곳에 박혀있는 나이프에 의해 아야의 움직임은 급격히 멈추어졌다. 거기에 더해 아야를 중심으로 사방을 둘러싼 나이프가 일제히 아야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이어서 바로 등 뒤에서 목을 향해 휘둘러지는 사쿠야의 칼날.
아야는 재빨리 주변의 나이프를 전부 쳐냈다. 그리고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사쿠야의 손은 허공을 갈랐고, 사쿠야 역시 사라지듯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사방으로 나이프와 바람이 튕겨져 흩어졌다. 두 사람이 서로 부딪힐때마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나이프와 바람의 칼날이 맞부딪히는 소리.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 겨우 몇 초만에 수십번은 맞부딪힌 싸움.
그리고 그 싸움 속에서, 사쿠야의 칼날이 아야를 향했다. 아야의 부채 끝부분 역시 사쿠야를 향했다. 양쪽이 동시에 서로를 노린 타이밍.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살의의 공격. 둘 중 더 빠른 쪽이 이긴다. 누가 더 빠른가. 찰나의 순간, 그 사이에 승부는 결정난다.
그때…
“으랴아아아앗!!”
스이카의 외침. 그리고 동시에,
“흐아아아아아아앗!!”
그와 반대편에 선 레밀리아의 외침. 한참을 크기를 키워나간 두 사람의 공격이 서로를 향했다. 레밀리아의 거대하고 붉은 창. 스이카의 끝없이 크기를 키워나간 화염. 그 둘이, 창과 화염구가 서로 부딪혔다.
중심에 빛이, 거대한 충격이 일었다.
최강이라 불리는 두 요괴들. 오니와 흡혈귀의 모든 힘을 쏟아부은 공격. 그 둘의 충돌은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며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나무는 뿌리채 휩쓸리며 날아갔고, 대지를 이루는 바위도 산산히 쪼개져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격에 직접 뛰어든 레밀리아와 스이카 역시, 그리고 근처에서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있던 사쿠야와 아야 마저도. 그곳에 있던 모든것이, 모두가, 전부 그 열기와 풍압에 휩싸이며 날아갔다.
…
짙은 연기가 주변을 에워 싸고 있었다. 그리고 연기가 걷히고 난 그 자리에는,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불이 나게 싸우던 모두가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레밀리아도, 사쿠야도, 스이카도, 아야도. 모두가 몸에 상처를 크게 입고 의식마저 잃고 쓰러져 있었다. 승자 따윈 없었다. 모두가 패배자. 그저 서로가 서로를 파멸시킨 싸움. 그리고 모두가 쓰러진 그곳에, 그 자리에 서있는 사람은 한사람 뿐이었다.
오직 한사람. 그 폭발에 휘말렸음에도 상처하나 없는 한사람. 새하얀 천사가, 걸음을 멈추곤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제자리에 멈추어 선 채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았다. 레밀리아를, 사쿠야를, 스이카를, 아야를, 쓰러져있는 모두를 한번씩 슥 훑어보고는, 다시 앞을 보고는 걸어나갔다.
또각. 또각.
천사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주변에, 그녀를 막아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바닥에 쓰러져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천사는 향했다. 눈동자가 있는 곳으로. 모두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이미 4개의 눈을 뜬 거대한 눈동자를 향해 계속해서 걸어갔다. 차가운 걸음. 숨이 막힐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걸음. 그리고 그 걸음은, 계속 걸어나가 눈동자가 있는 곳의 거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 이상은…!”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천사의 앞을 막아섰다. 검게 그을린 몸. 그리고 상처투성이. 조금 전 폭발에 휘말린 탓에 엉망이 된 마리사가, 양 팔을 크게 벌리고 천사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상처의 통증을 참아가며 천사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겨우 그런 정도로, 천사가 걸음을 멈출 리가 없었다.
천사는 계속해서 다가갔다. 언제나와 같은 걸음으로. 그 차갑고도 아름다운 걸음으로. 마리사는 이를 악물고는 천사를 향해 다가갔다. 천사를 막아서려 손을 뻗었다. 그리고…
멈칫. 마리사의 손은 천사에게 닿기 직전에 멈추었다.
공포. 등골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공포. 그것이 마리사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요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요기 따위와는 전혀 다른 공포였다.
‘건드리면 죽는다.’
그저 그 차가운 현실만이 마리사의 피부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마리사는 재빨리 손을 물리고 뒷걸음질을 쳤다. 천사에게 닿지 않도록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그런 마리사를 보며 천사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천사가 점점 더 다가갈수록, 마리사는 점점 더 뒤로 물러났다.
뒷걸음을 치던 도중 돌부리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넘어진 채로, 마리사는 두 팔과 다리를 기어가며 뒤로 물러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천사에게 닿아서만은 안된다. 하지만, 마리사에게 그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마리사는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절벽. 깊은 낭떠러지. 처음에 스이카가 땅을 들어올리는 탓에 생긴 커다란 구멍이 마리사의 뒤에 광대하게 뚫려 있었다. 떨어져도 무사하지 못할 정도의 깊이. 그리고 앞에선, 계속해서 천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공포, 죽음이, 마리사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리사는 몸이 굳어버린 채 다가오는 천사의 모습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사는 마리사의 바로 앞에서 멈추어섰다.
마리사는 천사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천사가 멈춰선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멈춘 것이 아닌 도착한 것이었다. 천사가 멈춰선 그 자리. 바로 그 자리는, 하늘의 눈동자가 있는 자리였다.
검은 하늘이, 어둠이 더욱 짙게 드리워졌다. 넓게 펼쳐진 천사의 6개의 날개가 어둠 속에서 마리사를 집어삼킬듯 노려보고 있었다. 천사는 조용히 고개를 내려 마리사를 내려다 보았다. 그 아름다운 얼굴이 마리사의 눈에 비춰졌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며, 마리사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얼굴엔 살의도, 악의도,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그저 죽일 뿐.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죽음 그 자체인 모습. 죽음의 천사.
마리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사를 보며 물었다.
“얼마나… 대체 얼마나 죽일 셈인거야.”
그리고 마리사를 보며, 천사는 그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부.”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대체 왜…!”
마리사의 물음에, 이번에도 천사는 대답했다.
“너희가 원했으니까.”
마리사는 팔괘로를 꺼내들었다. 팔괘로를 천사에게 조준하고 빛을 내뿜으며 발악하듯 공격했다. 하지만, 어디를 쏴 봐도 마찬가지였다. 미간을 쏴도, 심장을 향해 쏴도. 공격은 하나같이 천사의 몸을 통과해 빠져나갈 뿐이었다. 절망하듯, 마리사는 손에 쥔 팔괘로를 스르르 내려놓으며 말했다.
“레이무… 레이무뿐이야. 저 녀석을 이길 수 있는 건…”
천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천사의 눈과, 하늘에 떠있는 눈동자가 마주쳤다. 천사는 눈동자를 향하여 그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눈동자를 부르듯, 그 힘을 갈구하듯. 그리고 그에 응답하듯, 마지막 눈동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다섯 번째 눈동자. 그 마지막 눈동자가 눈을 떴다. 어두운 하늘에, 커다랗게 뜬 5개의 눈동자가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이 세계를 지켜보고 있다는 듯이, 이 세계에 구원을 내리겠다는 듯이. 죽음의 기운이, 세계를 향해 내려왔다.
마리사는 몸을 웅크리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더는 막을 수 없었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온몸으로 느껴져오는 죽음의 기운. 하늘에서부터 살결을 어루만지며 감싸오는 죽음의 공포. 죽는다. 이제 곧 죽는다. 모든 것이, 모두의 죽음이, 마침내 세상에 내려지려는 그때,
퍼억.
…무언가, 타격음이 들렸다.
죽음의 기운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가. 조금 전까지의 죽음의 기운이 꿈인듯 자신은 명백히 살아있었다. 마리사는 웅크렸던 몸을 풀고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감싸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무언가에 얻어맞고 비틀거리는 천사. 그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던 천사가 괴로워하며 아파하는 모습을.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마리사의 시선은 바닥을 향했다. 정확히는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그것을. 천사를 공격한 음양옥을. 이내 음양옥은 공중으로 붕 떠올라 곧장 자신이 날아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음양옥이 도달한 곳에, 그 자리에서 하늘을 날고 있는 자는…
“레이무우우우우우!!!!”
마리사는 벌떡 튀어오르듯 일어나 거의 울먹이듯 소리쳤다.
“늦었잖아~! 뭐 하다 이제야 온 거냐구!”
하늘에서, 레이무는 자신을 보며 소리치는 마리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마리사는 제자리에서 환호하듯 양팔을 벌리고 방방 뛰고 있었다. 레이무는 그런 마리사를 보며 입가에 살며시 웃음지었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내려와 마리사 주변의 땅을 살포시 밟으며 말했다.
“미안. 동굴에서 헤매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
레이무가 내려오자마자 마리사는 재빨리 달려와 그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리고 숨 고를 틈도 주지 않고 허겁지겁 물었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그 음양옥이 있으면 공격할 수 있는거야?”
마리사는 레이무의 손에 들려있는 음양옥을 보며 물었다. 도대체 얼마나 굉장한 물건인가. 무려 그 천사를 공격하는게 가능한 물건이라니. 분명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마리사는 두 눈을 반짝이며 기대감에 부푼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런 마리사의 기대와는 달리, 레이무는 무척이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음양옥에게 그런 능력은 없어.”
“그럼?”
마리사의 물음에 레이무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소원을 빌었어.”
“소원?”
마리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동굴에 있던 신이 알려줬어. 그게 이 하쿠레이 무녀에게 전해지는 음양옥만의 특별한 능력이라고.”
레이무가 홀로 동굴을 나가려고 할때, 음양옥의 신은 레이무를 멈춰세웠다. 그리고는 레이무가 찾던 음양옥의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바로 그때 음양옥의 신이 말했다.
“하나 있죠. 그 음양옥에만 있는 ‘특별한 능력’. 그건 바로… ‘그릇’이 되는 겁니다.”
“그릇?”
“그래요.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 기도. 그것을 그 음양옥에 담아 사용할 수 있죠. 마치 그릇처럼요.”
“...”
“누군가의 소원을 담는 그릇. 모두의 기대를 받고 살아가는 하쿠레이 무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도구 아닌가요?”
매우 짧고도 간단한 이야기.
동굴에서 들었던 그 이야기를 레이무는 마리사에게 전해주었다. 하지만, 음양옥의 비밀을 전해들은 마리사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서…? 그게 저 녀석을 공격할 수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마리사는 레이무의 대답을 기대하며 레이무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레이무는 그 눈길에 대답하지 않았다. 마리사의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그대로 마리사의 옆을 지나 천사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천사는 비틀거리던 몸을 이제야 겨우 가누고 있었다. 음양옥에 맞은 타격이 컸는지 얼굴을 한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레이무가 다가가자 천사는 얼굴을 감싼 손가락 틈 사이의 눈동자로 레이무를 노려보았다. 그런 천사를 보고, 레이무는 물었다.
“너… 죽을 생각이야?”
“!?”
반응을 한건 마리사였다. 레이무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천사가 죽을 생각이라니, 오히려 천사에게 모조리 죽을뻔한건 자신들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공격도 전부 통하지 않으니 천사를 죽인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리사의 생각과 달리, 레이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침에, 내가 음양옥을 사용해 널 공격했을 때, 그때 난 네가 죽기를 바랬어.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소원 빌었어. 그런데 그게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너, 원래부터 죽을 생각이었단 거지?”
마리사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 천사와 레이무를 수차례 번갈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마리사의 모습과는 반대로, 천사는 너무나도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 했을텐데… ‘전부’라고.”
“...역시.”
천사의 말에 레이무는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레이무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음양옥을 보며 말했다.
“그때도… 그래서였어. 내가 널 이길 수 있었던 건.”
레이무의 말에, 천사는 무언가에 반응한 듯 움찔했다.
“그때…”
“그래. 그때 빌었던 소원은, 네가 죽는 게 아니었으니까.”
레이무의 말에, 천사의 표정이 변해갔다. 넋을 잃은 표정. 마리사와 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하지만 천사가 그런 표정을 지은 이유는 레이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레이무가 말한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날의 기억이 바로 어제와 같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기에, 천사는 레이무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날 있었던 일, 잊은 건 아니겠지?”
레이무는 물었다. 레이무의 물음에 천사는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떠올렸다.
모두를 죽인 그 날, 유일하게 한 명만을 죽이지 못한 기억을. 그날의, 레이무에게 처음으로 패배했던 기억을.
그날은 비가 내리지 않았음에도 모든 것이 젖어 있었다. 벽에도, 기둥에도, 그 어디에도, 피에 젖은 살점들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바닥에, 피의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천사는 고개를 숙인 채로 말없이 그것들을 보았다.
고개는 들 필요가 없었다. 모두 죽어있었으니까. 전부 발밑에, 피와 살점이 되어 떠다니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천사는 어디에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제, 끝난 것이다. 더 이상 싸움을 이어가는 자들은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싸움의 끝이자, 이것이 모두가 바랬던 결말이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일은 마지막 한가지 뿐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죽음.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모두를 죽인 자신의 죽음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증오를 없앤다. 그것으로 이 세상에 끝없이 이어지던 싸움과 증오는 끝이 난다. 그것이 모두가 바래왔던 일이다.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에…
첨벙. 피의 웅덩이에 발을 내딛는 소리. 그리고 힘겹게 내쉬어지는 거친 숨소리. 천사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처음보는 낯선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
아직 더 있었나?
천사는 생각했다. 그곳에 홀로 서있는 낯선 소녀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직 작고, 힘없는 소녀의 모습.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천사는 곧장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천사가 무슨 짓을 할지는, 주변에 널린 시체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소녀는 다가오는 천사에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주춤했다. 그런 소녀의 반응이 무색하게 천사는 소녀를 향해 더욱 더 다가갔다. 찰랑 찰랑. 피의 웅덩이를 가르는 발걸음이 점점 더 소녀에게로 가까워갔다. 소녀는 이를 악물고, 곧장 두려움을 견디고는 뒷걸음을 멈췄다. 소녀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품에서 여러장의 부적을 꺼내들었다. 닿기만해도 어떤 요괴든 죽일 수 있는 부적을, 무녀가 요괴를 죽일 때 사용하는 부적을, 그동안의 갈고 닦은 실력으로 천사를 향해 힘껏 날렸다. 그리고 그 부적들은, 전부 천사의 몸을 통과해 뒤로 빠져나갔다.
소용없었다. 그런 공격 따위 통할 리가 없었다.
지금껏 요괴를 수 없이 죽여온 퇴마사도, 산 하나를 통째로 으깨버릴 정도로 강한 요괴도, 그 누구도 자신에게 상처 입힐 수 없었다. 자신은 모두의 바램이 이루어져 만들어진 소원 그 자체. 누군가가 바라고 원하는 한 이 몸이 상처 입을 일은 절대로 없었다. 그런데 하물며 이런 작은 소녀가, 제대로 서있는 것조차 못하는 이 작은 소녀가, 대체 혼자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순간,
퍼억.
무언가, 복부를 중심으로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몸이 뒤로 비틀거리며 전신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무슨 감각인가. 이런 감각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통증.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통증. 무언가에 맞았다. 복부로부터 머리까지 뻗어가는 아찔한 감각. 일순간에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고통.
천사는 그만 쓰러지듯 무릎 꿇으며 피웅덩이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주변엔, 음양옥 하나가 함께 떨어져 굴러다녔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힘겹게 숨을 들이마쉬고, 또다시 토해내듯 뱉어내었다. 그럴 리가. 있을 수 없었다. 지금껏 공격을 맞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천사는 복부를 움켜쥐고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소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소녀의 모습을 보며 천사는 한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가 어떻게 자신을 공격 할 수 있었는지도, 어떻게 어린 소녀가 이토록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는지도 아니었다. 고통 속에서, 천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오직 한가지 뿐이었다.
‘무엇을 빌었지?’
자신은 다른 이들의 소원의 의해 태어난 존재. 자신에게 상처 입힐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원 그 자체 뿐이었다. 서로 대립되는 다른 소원. 모두가 천사에게 빌었던 소원이 아닌 다른 소원이 격돌했을 때, 천사는 비로소 그 몸에 상처를 입는다.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천사는 언제나 지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 그리고 그 귀에 들려온 것은 언제나 똑같았다. 언제나 원망과 증오, 그리고 죽음 뿐이었다. 죽여달라. 더 많이 죽여달라. 모두가 언제나 같은 소원만을 빌었다. 그렇기에 단 한번도, 그 누구도, 그녀가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때 막을 수 없었다. 그들도 같은 걸 바라고 있었으니까. 모두의 죽음을 원했으니까. 그들과 다른 소원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또 다시, 음양옥 하나가 날아왔다. 아니, 이번엔 한 개가 아닌 여러 개가, 반짝이는 음양옥들이 빛을 내며 천사에게로 날아왔다. 그 음양옥들은 천사의 주변을 넓게 둘러싸 감싸고는, 점차 천사의 몸을 옥죄어왔다.
봉인. 봉인의 힘이 천사에게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음양옥은 천사의 몸을 통과하지 않고 그대로 봉인의 효력을 내고 있었다. 몸을 옥죄고, 힘을 억누르며, 점점 천사의 몸을 봉인해갔다.
천사는 반격하지 않았다. 주변을 감싼 음양옥들에 몸이 점차 굳어감에도, 천사는 오직 소녀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인가. 자신은 어차피 죽는다. 모두를 죽이고, 마지막엔 자기 자신조차 죽여 이 세상의 모든 증오를 없앨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죽음을 원한다면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 것이 곧 모두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소녀의 공격은 몸을 통과하지 않고, 그대로 몸에 부딪히며 상처를 안겨주었다.
다른 소원을 빌었다. 무언가 다른 소원을 빌었다. 하지만 무엇이냐. 소중한 사람을 잃고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채로 빌 수 있는 소원이 다른 무엇이 있단 말이냐. 대체 무엇을 빌었기에 이토록 자신을 거부하고 있나. 그렇게나 슬퍼하면서, 그렇게 흐르는 눈물에 눈물 범벅이 되어가면서,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지?
끝없이 묻고, 또 끝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아무리 되뇌어도 그 답을 알아낼 순 없었다. 천사가 들었던 소원 중에 그런 내용은 없었으니까. 언제나 같은 이야기만을 들었으니까. 천사는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는 무엇을 바라고 있나. 그 물음이, 그 손이 소녀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끝내 그 답은 듣지 못했다. 천사의 손이 소녀에게 닿기 전, 그 몸은 이미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소녀에게 손을 뻗은 채로, 끝없는 물음을 가진 채로, 천사는 그렇게 봉인 속에 잠들었다.
수년의 시간이 지날 동안. 봉인의 힘이 약해지고, 천사가 다시 소녀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천사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앞엔, 그때의 소녀가 지금도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그때와 달리 성장한 소녀의 모습. 그 소녀를 보며, 천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래. 그때와 같은 소원을 빌었어.”
레이무는 손에 들고 있는 음양옥을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처음에 천사를 공격한 음양옥. 그 음양옥은 어느새 옅은 푸른 빛을 띄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천사에게 타격을 가한 음양옥. 그 음양옥을 들고 레이무는 천사에게로 다가갔다.
레이무와 천사의 거리가 점점 좁혀져갔다. 금방이라도 서로 맞부딪힐듯 가까워졌다. 하지만 도중, 레이무는 갑작스레 몸을 휙 돌려 방향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몇 걸음. 천사에게서 멀어지며 바꾼 방향으로 간 레이무는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그곳에 멈춰서, 레이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선, 주변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무도, 풍경도, 싸움의 흔적도, 그리고 그 싸움의 결과들까지도.
모두가, 쓰러져 있었다. 레밀리아도, 사쿠야도, 스이카도, 아야도. 모두가 바닥에 쓰러져있는 모습이 레이무의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처참하게, 서로 싸우다 쓰러져 있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며, 레이무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참…”
레이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레이무는 내뱉은 한숨 이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숨을 한번에 내뱉으며, 쓰러진 모두를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일어나!!!”
고막을 관통하는 앙칼진 목소리. 레이무의 목소리에, 쓰러져있던 4명이 동시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오… 오옷. 레이무. 언제 왔어?”
허겁지겁 일어나 몸을 일으키려는 모두들. 그중에서도 특히 잠에서 깬듯 비몽사몽한 스이카가 말했다.
“너희들, 나를 도와줘야겠어.”
“돕…다니?”
스이카가 여전히 헤롱거리며 말했다. 그 물음에 레이무는 다시 천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천사를 노려다 보며 말했다.
“저 녀석을 쓰러트릴 거야.”
레이무는 천사를 노려보는 눈빛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 눈빛에 답하듯, 천사도 레이무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도와줄 수야 있지. 하지만 레이무, 어떻게?”
마리사가 물었다.
레이무는 양 팔을 넓게 펼쳤다. 그와 함께 레이무의 주변으로 펼쳐져 나온 음양옥들이 레이무의 주변을 감쌌다. 7개의 음양옥. 그 음양옥들이 레이무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한 번에 끝낼거야. 너희들은 이 음양옥이 빛을 내게 만들어주면 돼.”
“어떻게?”
마리사가 물었다. 레이무는 마리사의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양쪽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별 거 없어. 그냥 싸우면 돼.”
“그치만…!! 저 녀석한텐 공격이 안 통한다구!!!”
“그거 말고. 평소 하던 거 있잖아?”
레이무는 정말로 간단하다는 듯이 말했다. 레이무의 말투, 레이무의 표정. 마리사는 레이무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평소 하던 거. 자신들이 싸울때면 언제나 하던 그것. 탄막놀이. 레이무는 그걸 말하고 있었다.
“진심이야?”
그토록 강한 공격도 전혀 통하지 않던 상대다. 그런데 하물며 제대로 된 공격도 아닌 놀이라니. 그런 걸로 싸워서 이기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또각.
천사가 움직였다. 천사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마리사는 몸을 움찔하며 놀랐다. 죽음이 다가오는 듯한 공포. 또다시 천사를 바로 눈앞에 마주한 그 공포를 느끼긴 싫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마리사는 팔괘로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끝을 천사를 향해 조준했다.
“에잇. 나도 몰라!”
팔괘로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다만 거기서 뿜어져 나온 것은 이전과 같은 강력한 화력이 아닌 작은 빛을 내는 여러개의 탄막이었다. 별빛의 모양을 한 작고 아름다운 수십개의 탄막. 그것이 팔괘로에서 뿜어져 나와 천사에게로 향했다.
별들은 천사에게로 날아가 터졌다. 작은 폭발의 별빛, 그리고 연기. 이윽고, 연기가 걷히고 공격을 받은 천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천사는 공격을 막듯 얼굴을 팔로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팔을 감싼 옷깃이, 조금 찢어져 있었다. 그 팔 역시도 상처를 입은 듯 옅은 색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살상력을 가진 마법은 아니었기에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팔에 남은 흔적은 분명 이전처럼 공격이 통과한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통했어…!”
천사의 모습을 보며 마리사는 스스로도 놀라며 말했다.
“그렇지?”
레이무는 마리사를 보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마리사 역시도 레이무를 보며 활짝 웃음 지었다.
하쿠레이 음양옥이 가지는 특별한 능력. 그것은 누군가의 소원을 담는 그릇. 마리사의 소원을 담아, 레이무의 주변을 도는 7개의 음양옥중 하나가 밝게 빛났다.
“...빛나고 있어.”
마리사가 음양옥들을 보며 말했다. 그 중 두 개의 음양옥이 빛나고 있었다. 하나는 레이무의 것. 다른 하나는 마리사의 것. 두 사람의 소원을 담은 음양옥들이 레이무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다섯 개가 남아있었다.
천사는 그 둘을 보며 태세를 갖췄다. 그녀의 손에 마력이 집중되면서 하얀 빛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빛은, 그녀의 손에서 기다란 지팡이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천사는 지팡이를 쥔 채로 마력을 더욱 모았다. 지팡이 끝의 둥근 구슬이 밝게 빛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강한 마력, 금방이라도 뿜어져 나올듯 발하는 빛. 레이무와 마리사는 자리를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레이무는 외쳤다.
“스이카!”
하늘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아니 날아왔다기 보다는, 무언가 수직으로 땅에 직격했다. 충돌과 함께 땅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튀는 파편. 자그마한 주먹에서 나오는 괴력. 스이카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해했다구 레이무. 그냥 놀면 되는 거지?”
스이카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천사에게 주먹을 날렸다. 천사는 당황한듯 몸을 뒤로 빼며 주먹을 피했다. 이어지는 두번째 주먹. 곧게 내지른 주먹을 천사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막아냈다. 그리고 그 주먹은, 천사의 몸을 통과하지 않았다. 스이카는 막힌 주먹을 그대로 내질렀다. 천사는 그 힘에 밀리며 그대로 튕겨지듯 뒤로 밀려났다.
스이카는 허리에 차고 있던 호리병을 입에 대고 술을 한가득 들이부었다. 그리고 입에 부운 그것을 천사를 향해 다시 내뱉었을 때, 그것은 더이상 술이 아니었다. 뜨거운 화염의 탄막. 스이카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러개의 화염탄이 천사의 몸을 덮쳤다. 화염은 천사의 몸에 불길을 휘감았고, 이내 천사는 날개를 펼쳐 자신의 몸을 감싼 불길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불길이 전부 사라졌을 때의 천사의 몸은, 이번에도 통과하지 않았단 걸 보여주듯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동안 천사를 공격한 모두가 이렇게 빌었다.
죽어라. 제발 죽어줘라. 하지만 그런 소원을 아무리 빈다 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리가 없었다. 천사는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으니까. 이미 이루어져 있는 소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죽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살의가 없는 공격. 싸움이 아닌 놀이. 모두가 함께 어울리기 위한 놀이.
스이카는 바라고 있었다. 그걸 위해서 지상으로 나와 레이무와 놀았으니까.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바라는 소원. 스이카의 소원을 담아, 레이무의 음양옥중 세 번째 음양옥이 밝게 빛났다.
스이카는 또다시 천사에게로 달려들었다. 작은 몸으로 빠르게 달려들어, 높게 점프하며 주먹을 쥐었다.
천사는 지팡이를 들었다. 그 끝의 둥근 구슬이 빛나며 눈부시게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수천개의 빛의 갈래. 셀 수도 없이 많은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천사에게 정면으로 달려든 스이카는 그 빛을 피할 수 없었다. 빛은 그대로 수없이 스이카의 몸에 박히며, 연이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으윽…!”
스이카는 폭발의 풍압에 튕겨 날아가며 그대로 땅에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 빛은 그대로 뒤에 있는 레이무와 마리사에게까지도 날아갔다. 너무나 많았다. 아니, 그 이상으로 너무나 빨랐다. 피하기에는 너무 짧은 거리. 거기다가 너무나 강한 파괴력. 스이카처럼 강한 요괴라면 모를까,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그 공격을 맞았다간 절대로 무사할 수 없었다.
레이무는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만한 공격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스피드가 레이무에겐 없었다. 미처 한 걸음을 떼기도 전에 빛은 이미 레이무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을 눈앞에 직면한 순간,
샥.
레이무는, 공격에 맞지 않았다. 아니, 무언가가 레이무를 낚아채 날아갔다. 레이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 환상향 최속이라 불릴 정도의 속도.
레이무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레이무는, 어느새 아야의 품에 안겨있었다.
“멍 때리고 있으면 안 되죠.”
아야는 품에 안긴 레이무를 보며 말했다.
“도와달라고 했죠? 빠른 거라면 맡겨주세요.”
아야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듯이. 날아오는 빛의 갈래 사이사이를 빠르게 지나며 천사의 모든 공격을 회피했다. 그러던 사이, 레이무는 아야를 보며 물었다.
“마리사! 마리사는?”
“걱정 마세요. 저보다 빠른 사람이 있으니까.”
아야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레이무도 아야를 따라 그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이미 공격의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 있는 사쿠야가 마리사와 함께 있었다. 마리사는 자신이 무사하다는 걸 알리듯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레이무도 마리사를 보며 안심한듯 웃음지었다. 그리고 사쿠야는, 마리사를 그곳에 두고 또다시 순식간에 천사의 가까이로 이동했다.
천사는 지팡이를 높게 들었다. 다시 한번 그곳에 빛이 모여들었다. 그런 천사의 앞에 마주선 사쿠야는 품속에서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이번엔 여러개가 아닌 단 하나. 단 하나의 나이프만을 들고 천사를 향해 힘껏 던졌다.
소용없었다. 그렇게 대놓고 머리를 겨냥한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사쿠야의 나이프는 천사의 머리를 통과해 그대로 천사의 뒤로 날아갔다.
천사는 계속해서 지팡이에 빛을 더욱 모았다. 모은 빛이 아까보다 멀리 뻗어나가도록 손을 더욱 높게 뻗었다. 그러던 때에…
팅. 무언가가 튕겨지는 소리. 사쿠야의 나이프가 튕겨지는 소리. 천사의 몸을 빠져나가 날아간 나이프가 그 뒤에 있던 바위에 부딪혀 다시 천사에게로 날아오는 소리였다.
그리고, 되돌아오는 나이프는 천사가 아닌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를 향했다. 사쿠야가 처음 던질때부터 계산하여 던진 나이프의 각도. 뒤에서 나이프가 다시 날아온다는 걸 천사가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나이프는 천사의 손을 그었고, 그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강하게 치며 땅으로 떨어뜨렸다.
지팡이가 땅으로 떨어지며 사방으로 소리가 울려퍼졌다. 천사의 고운 손에는 사쿠야의 나이프로 인한 상처가 붉게 그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천사는 떨어진 지팡이를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아야는 부채를 휘둘렀다. 레이무를 내려놓고 어느새 천사 근처까지 와있던 아야가, 천사를 향해 부채를 휘둘렀다. 부채 끝을 타고 흘러나오는 강렬한 바람. 그리고 그것이 모여 순식간에 만들어진 거대한 회오리 바람. 바람은 천사를 덮치며 마치 칼날처럼 천사의 몸을 베었다. 천사는 재빨리 날개로 몸을 감싸고 바람에 저항해 몸을 웅크렸다. 그 사이, 바닥에 떨어진 지팡이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가 버렸다.
사쿠야와 아야의 협동 공격. 빠른 스피드와 기술을 이용한 공격. 자신들의 조직뿐만 아닌, 서로의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한 공격. 두 사람의 소원을 담아, 네 번째, 다섯 번째 음양옥이 밝게 빛났다.
“다음은 내 차례!”
천사의 등 뒤에서 당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사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뒤엔, 어느새 레밀리아가 날아와 날고 있었다.
레밀리아는 공격 태세를 갖췄다. 레밀리아의 주변으로 마법진들이 생겨나며 천사를 향해 한쪽밖에 남지 않은 팔을 뻗었다. 천사는 공격을 피할 준비를 했다. 웅크린 몸을 일으켜 즉시 움직인다면 피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윽…!”
천사의 몸은, 무언가에 묶인 듯 움직이지 못했다.
결계. 사방으로 높게 뻗은 결계진. 그것이 천사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아야의 뒤를 따라 날아온 레이무가 땅에 손을 대고 결계를 펼치고 있었다. 레이무는 손을 댄 채로 고개를 들어, 레밀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는 법 알지?”
“물론.”
레이무와 눈을 마주치며, 레밀리아는 천사를 향해 팔을 뻗었다. 레이무가 가르쳐준대로. 레이무가 알려준 대로.
세상에 처음으로 흡혈귀가 나타난 흡혈귀 이변때, 모두가 처음 보는 요괴에 공포에 떨었을 때, 모두가 쓰러진 흡혈귀를 보며 무녀에게 죽여달라고 빌었다. 흡혈귀는 쓰러진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녀는, 레이무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쓰러진 그녀에게 손을 뻗어 내밀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손을 뻗어준 레이무처럼, 레밀리아 역시 손을 뻗었다.
레밀리아의 뻗은 손을 타고 박쥐 형태의 탄막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박쥐의 탄막이 날아가며 일제히 천사의 몸을 덮쳤다. 탄막의 사용법. 모두가 죽이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 그날 레이무가 알려준 방법대로. 그리고는 빌었다. 그날 레이무의 손을 잡으며 떠올렸던 소원. 그때와 같은 소원.
레밀리아의 소원을 담아, 레이무의 여섯 번째 음양옥이 밝게 빛났다.
“좋아! 계속 밀어붙여!”
저 멀리, 마리사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며 외쳤다. 기합을 가득 실은 그 외침 탓인지, 레밀리아의 탄막도 기세를 더해 더욱 늘어났다. 그 옆에 있던 사쿠야도, 아야도, 각자 자신의 공격을 천사에게로 날렸다. 날아오는 마리사 역시도 손에 팔괘로를 들고 천사를 향해 쏘았다. 하지만 그러기를 몇번, 마리사는 곧장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마리사는 공격을 하는 것보다 먼저, 스이카가 쓰러져 있는 곳을 향했다. 스이카가 천사의 공격을 받고 나가떨어진 곳. 그 앞에 날아가 착지했다.
“괜찮냐?”
마리사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스이카를 보며 말했다. 천사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은 탓에 옷이 찢어지고 복부의 깊은 상처가 훤히 드러나있는 모습. 오니 정도로 강한 요괴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죽었을 몸. 그런 스이카를 마리사는 부축하여 일으켜 주었다.
“으읏…”
스이카는 마리사의 손을 잡고 그 몸에 받들어지며 일어났다. 스이카는 그런 몸상태로도, 마리사의 부축 몇번만으로 다시 기운차리며 말했다.
“이 정도 쯤은…”
스이카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리사의 부축에서 벗어나 하늘로 높게 날아오르며 외쳤다.
“별 거 아니지!”
하늘로 날아선 스이카의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안개탄이 퍼져나갔다. 수없이 퍼져나간 안개탄들은 곧장 방향을 틀어 천사에게로 날아갔다. 마치 유도탄처럼.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천사를 향해 쏟아붓는 탄막에 합류하여 날아갔다. 상처가 심한 몸으로도 여전히 강한 힘을 내는 스이카를 보며 마리사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마리사 역시도 다시 빗자루를 타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스이카와 함께 천사를 향해 탄막을 쏘았다.
공격이, 전부 한곳으로 퍼부어졌다. 레밀리아의 박쥐탄, 사쿠야의 나이프, 아야의 바람, 스이카의 안개탄, 마리사의 별빛.
그 공격을 전부 받는 천사는 몸을 웅크리고 날개로 몸을 감싸며 탄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있었다. 천사의 여섯 개의 날개로도 그것을 전부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너무나 많은 탄막. 인간과 요괴들의 계속되는 협동 공격. 천사는 쏟아내는 탄막을 받아내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탄막이 거세질수록, 그 위력이 점점 더 강해질수록, 천사는 더욱, 더욱 더 몸을 웅크렸다.
아니, 있을 수 없었다.
인간과 요괴는 적이다.
그런데 왜냐. 왜 모든 인간이, 모든 요괴가, 저 무녀 하나를 위해 움직이는거냐. 왜 서로를 도우며 싸우고 있는거냐.
마리사의 탄막이 천사를 향해 날아갔다. 이전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탄막. 그리고 천사의 날개가, 그것을 튕겨냈다.
“...!!”
천사의 날개가 점점 더 커져갔다. 부풀어오르듯 펼쳐지며, 끝없이 깃털이 새로 돋아나며, 그 몸의 몇 배나 되는 크기로 커져갔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을 정도로. 그리고 그 몸에서, 눈부시게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피해!”
천사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작은 지팡이에서 나왔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한 빛. 그보다 훨씬 많은 빛의 탄. 빛은 사방으로 퍼지며 주변에 닿는대로 터져나갔다. 땅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나무를 수십개씩 휩쓸며, 천사의 주변의 모든것을 순식간에 초토화 시켰다. 레이무를 포함한 모두는 다급히 천사를 향한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천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천사의 날개가 펼쳐졌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커다래진 6개의 날개가, 주변을 감싼 결계를 깨트리며 활짝 펼쳐졌다. 세계를 뒤덮는 듯한 거대한 날개.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한 모습. 그리고 그 중심의 천사의 몸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승천하는 것처럼. 하늘의 계시를 받는 것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며 위로, 더 위로 향했다. 모두들 천사를 향해 시선을 위로 향했다. 그리고 천사가 날아오르는 바로 위의 하늘엔, 눈동자가 있었다.
마리사는 천사를 향해 탄막을 쐈다. 사쿠야도, 스이카도. 동시에 천사를 막으려 탄막을 날려댔다. 하지만 그 공격은 전부 커다란 날개에 막혀버릴 뿐이었다. 천사는 하늘에서 다시 한번 빛을 내뿜었다. 공중에 떠오르며 위 아래로 전부 쏟아대는 빛. 천사의 주변을 쫓으며 날던 모두는 그 빛을 피해 달아나며 멀찍이 떨어졌다.
공격은 먹히지 않고, 저지하기는 커녕 가까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는 중에도 천사는 점점 더 하늘의 눈동자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어찌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 마리사는 소리쳤다.
“레이무! 이제 어떡해야 해?”
마리사는 레이무에게 물었다. 하지만, 레이무는 천사를 보고 있지 않았다. 레이무는 오직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음양옥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무는 말했다.
“하나가 부족해…”
레이무는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7개의 음양옥을 보며 말했다.
레이무, 마리사, 스이카, 아야, 사쿠야, 레밀리아.
모두의 소원을 담아 6개의 음양옥은 빛을 발했다. 하지만 하나, 마지막 하나의 음양옥은 여전히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가 더 필요했다. 그 기술을 사용하려면, 자신의 최강의 기술을 사용하려면, 가지고 있는 7개의 음양옥 모두가 빛을 내야만 했다. 하나만. 누구라도 좋으니 하나만 더. 레이무는 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그때…
“...!!”
마지막 음양옥에,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다른 음양옥만큼 완전한 빛은 아니었다. 아주 작은 빛. 보일듯 말듯한 희미한 빛이 음양옥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그 빛은 누군가의 소원을 담은 빛이었다.
누군가, 바라고 있었다. 작지만 분명한 소원이 서서히 음양옥에 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레이무!”
마리사의 외침에 레이무는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음양옥에 정신이 팔려 있던 탓에 탄이 바로 앞까지 날아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읏…!”
정면으로 날아온 탄을, 레이무는 재빨리 몸을 틀어 회피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직격을 피했을 뿐. 레이무의 몸을 스친 빛은 그대로 레이무의 바로 옆에서 폭발했다. 레이무는 폭발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균형을 잃고 땅으로 떨어져갔다. 그리고, 레이무와 함께 날고 있던 음양옥 역시 무너지듯 힘을 잃고 함께 떨어져갔다.
하늘이 시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마리사의 목소리가 점점 더 멀어져갔다. 레이무는 떨어지는 와중에도 음양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직 빛나지 않은 음양옥. 그 음양옥을 손에 잡아 품에 감싸안았다. 지켜야했다. 아직 희미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작은 소원을. 땅으로 떨어져 가면서도, 수많은 나뭇가지에 긁혀 상처가 생기면서도, 레이무는 음양옥 만큼은 품에 꼭 끌어안았다.
천사는 계속해서 하늘로 승천했다. 하얀 날개를 펼치고, 수많은 깃털을 흩날리며, 그 아름다운 빛을 몸에 감싸고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의 바로 앞엔, 눈동자가 있었다. 하늘을 가득 뒤덮은 다섯 개의 눈동자. 그것이 바로 앞에 있었다.
천사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힘이 펼쳐지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난다. 그때처럼. 모두의 죽음. 그리고 모두의 구원. 그 끝이 뻗은 천사의 손을 통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사슬이, 차르륵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뻗어나온 사슬이 천사의 팔을 휘감았다. 천사는 자신의 팔을 묶은 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끝엔, 사슬을 꽉 잡고 있는 레밀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겐 안 되지…”
레밀리아가 흡혈귀의 요력으로 만들어낸 붉은 사슬. 그 사슬이 눈동자로 향하는 천사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웃는 그 모습과 달리, 사슬을 잡고 있는 레밀리아에게 천사를 상대할 만큼의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천사는 반대쪽 팔로 사슬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 그 힘은 한 팔로 간신히 버티는 레밀리아에 비해 너무나 강했다. 천사가 사슬을 잡아당길 때마다 레밀리아의 몸은 휘청거리고, 사슬은 금방이라도 끊어질듯 바스라졌다. 누가봐도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 보였다. 힘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천사는 사슬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레밀리아의 요력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 사슬이 끊어지려는 찰나.
“벌써 쓰러지려는 건 아니겠지 흡혈귀?”
또 하나, 또다른 사슬이 반대편에서 날아왔다.
이번엔 오니의 사슬. 스이카의 사슬이 날아와 천사의 반대쪽 팔을 휘감았다. 스이카는 그대로 사슬을 힘껏 잡아당겨 천사의 팔을 레밀리아의 사슬에서 떼어내었다. 간발의 차이로, 레밀리아의 사슬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누가 쓰러진대?”
레밀리아는 쓰러질 뻔한 몸을 일으켜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남아있는 요력을 쥐어짜내 사슬을 복구시키고 있는 힘껏 자신의 사슬을 잡아당겼다. 그 반대편에 있는 스이카 역시도 마찬가지. 레밀리아와 스이카는 각자 자신의 사슬을 꽉 붙잡고 잡아당겼다. 한쪽 손이 다른 쪽 팔의 사슬을 풀지 못하도록.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천사는 양 팔이 묶인 채로, 그대로 하늘에서 움직임이 멈추어섰다.
레이무는 쓰러진 몸을 일으켰다. 손으로 땅을 짚고, 떨리는 두 다리로 지탱해가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몸은 온몸이 상처 투성이에, 제대로 일어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폭발에 의해 생긴 커다란 상처, 수많은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 거기에 땅에 떨어질 때의 충격까지. 레이무의 몸은, 다시 싸우기에는 너무나 크게 다쳐 있었다.
레이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사가, 눈동자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잠시 움직임은 멈춰 있었지만 저 움직임이 풀리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었다.
가야만 했다. 결판을 지으러.
레이무는 남아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내 바닥에 흩어져있는 음양옥들을 모았다. 레이무만큼이나 힘겹게 떨리는 음양옥들은 공중으로 떠올라 다시 레이무의 주변은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한계였다. 그 이상 아무리 힘을 쥐어짜내 보아도, 아무리 천사를 막으려 해보아도, 상처가 심한 몸은 하늘로 날아지지 않았다.
레이무는 상처 부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날지도 못하는 몸으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한걸음, 또 한걸음. 하늘의 천사를 올려다보며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다다를 수 있을까. 저 하늘까지.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 그런 레이무의 눈에 무언가가 비쳐졌다. 하늘에서부터,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별빛. 혜성처럼 날아오는 별빛 한 줄기. 어두운 하늘의 한줄기 빛이 레이무에게로 날아오며 바로 그 앞에 멈춰섰다. 별빛을 두른 빗자루.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한 사람. 빗자루의 위에서, 마리사가 레이무에게 인사하듯 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여어. 레이무.”
마리사는 한손가락으로 모자를 올려 가려진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그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레이무에게 물었다.
“준비됐지?”
레이무 역시 마리사에게 웃음으로 답하며 말했다.
“물론이지.”
마리사는 빗자루 위에 두 발로 올라탔다. 마치 보드를 타듯이. 제법 위험한 자세로 빗자루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레이무 역시 그 뒤로 빗자루에 올라타 마리사의 허리춤을 꽉 안았다.
빗자루는 붕 떠올라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곧장 천사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날아간 자리 뒤로 별빛을 뿜으며, 어두운 하늘을 수놓는 별빛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끝없이 날아갔다. 이거라면 날지 못하는 레이무도 천사에게로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속도는, 그 속도는 천사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마리사. 더 빨리 안돼?”
“최대한 빨리 가고 있어.”
레이무는 천사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천사가 아직 너무 멀리 있었다. 이대로 가면 늦는다. 빨리, 더 빨리 가야만 했다. 그때,
“도와드릴게요. 이러면 되겠죠?”
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아야의 부채로 다루는 바람을 조종하는 능력. 그 능력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두 사람의 등을 밀어주었다. 마치 힘을 더해주듯, 바람의 기류를 탄 빗자루는 그 속력을 더해 더욱 빠르게 날아갔다.
“나도 도울게.”
부채를 쥐고 있는 아야의 손 위로 또 다른 손이 얹어지며 말했다. 사쿠야의 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로의 힘을 한데 더했다. 사쿠야의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 그 능력의 힘을 받아 아야의 바람은 더욱 빠르게 가속했다. 그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빗자루도. 빗자루는 하늘을 향해 빠르게, 더욱 빠르게 날아갔다.
사슬이 흔들거렸다.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사슬은 천사가 힘을 줄수록 더욱 흔들거렸다. 레밀리아와 스이카는 온 힘을 다해 사슬을 꽉 잡고 버텼지만, 두 사람의 힘을 합쳐도 천사의 힘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콰직. 레밀리아의 사슬 쪽에서 금이 갔다. 자그마한 금은 순식간에 벌어지며 요력으로 만든 레밀리아의 사슬이 산산히 부서졌다. 한쪽 팔이 자유로워진 천사는 그 손으로 반대쪽 사슬을 쥐었다. 스이카 쪽의 사슬. 그리고 그 역시도 천사의 손에 닿는 순간 산산히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레밀리아는 손을 뻗었다. 스이카와 달리 얼마든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사슬로 천사의 움직임을 묶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 천사의 몸에서 빛이 났다. 천사가 공격을 할때면 나는 빛. 그 수 많은 탄을 뿜어 낼때의 빛. 레밀리아는 화들짝 놀라며 뻗은 팔을 물리고 천사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스이카 역시 마찬가지. 또 다시 그 공격을 맞았다간 어느쪽이든 무사할 수 없었다.
천사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뻗어나간 빛은 사방으로 퍼지며 두 사람의 주변에서 터져나갔다. 두 사람은 몸을 감싸며 저항했지만 그 폭발의 위력을 견뎌내기엔 역부족이였다.
“읏…!”
“윽…!”
레밀리아와 스이카는 폭발에 튕겨나가며 땅으로 떨어져갔다. 아득히 아래로. 어둠 속에 보이지도 않을 곳으로. 하늘엔, 또다시 천사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천사는 고개를 들었다. 천사의 눈과, 하늘에 떠있는 5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리고 그 주변에, 천사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다.
천사는 눈동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모두의 죽음. 그 죽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난다.
죽는다. 전부 죽는다.
전부 끝.
그때,
“가라! 레이무!!!”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외침. 그리고 그 앞엔, 레이무의 모습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리사의 빗자루에서 뛰어내린 레이무가, 그 가속도를 온몸에 받으며 날아오고 있었다.
레이무는 천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레이무의 주변을 맴돌던 7개의 음양옥이 뻗은 손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음양옥의 힘으로, 레이무는 사용했다. 오직 레이무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 레이무가 가진 최강의 기술. 레이무는 손을 더욱 뻗었다. 뻗은 손이 천사의 복부에 닿으며,
“「몽상천생!」”
레이무는 외쳤다.
그와 함께 음양옥에 담긴 모두의 소원이 힘을 내뿜었다. 음양옥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만 개의 부적.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의 부적. 그 부적이 천사의 몸을 뒤덮으며,
마지막 음양옥이 밝게 빛났다.
…기억 속을 헤매고 있다.
얼마나 이전의 기억인가. 낯선 소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그 소녀를 만날때면 항상 아프다.
처음 그 소녀를 만났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항상 그 소녀는 아픔을 준다.
몸이 부서지고, 날개가 찢어져간다.
끝없이 뿜어져나오는 부적에 온몸은 산산히 부서져갔다.
그러면서도, 기억은 아득히 선명해져만 갔다.
갈수록 멀리. 더욱 더 뚜렷이.
그것은 더욱 이전의 기억. 소녀와 만나기보다도 더 이전.
그것은, 그녀가 태어났을 때의 기억.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던 하늘.
그 하늘에, 어느날 사람들의 염원이 모여 작은 구체가 생겨났다.
사람들이 바라면 바랄수록, 구체는 점점 더 커지며 형태를 이루어갔다.
그것은 사람의 형태. 사람의 모습. 마치 태아가 탄생하는 것처럼, 수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양분 삼아 그것은 자라났다.
몸집이 커지고, 팔과 다리가 자라나고, 코와 입이 생겨났다.
새하얀 머릿결이 자라고, 등에선 하얀 깃털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빛을 그 몸에 휘감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녀의 귀에는 들려왔다.
‘죽여달라.’
그녀가 눈을 뜨고 세상을 보았을 때, 그녀의 눈에는 비춰졌다.
‘더 많이 죽여달라.’
서로가 죽고 죽이며 간절하게 외치는 모습이.
피로 물든 대지가.
모두가 원하고 있었다.
모두가 기도하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너는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
우리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는 천사.
세라프.
모두가 간절히 바랬다.
복수를 이루어줄 존재를.
증오스러운 자들에게 벌을 내려줄 존재를.
죄를 심판하고 죽음으로 이끌어줄 천사를.
죽음을. 죽음의 천사를.
천사는 손을 뻗었다.
귀에 들려오는 소원대로.
모두가 바라는 대로.
천사의 손끝을 따라 눈동자의 빛이 세상을 비췄다.
그리고, 그 날 세상은 구원을 맞이했다. 천사가 눈을 뜬 그 날, 세상에 끝없이 이어지던 싸움은 처음으로 멈추었다.
모두가 싸움을 멈추고, 발밑의 피웅덩이가 되어 떠다니고 있었다.
이제 한 번만 더, 앞으로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구원이 내린다면 모두의 소원은 이루어진다. 모두가 바란대로 이 세상의 죄는 모두 사라지고, 싸움은 완전히 멈춘다.
모두가 그걸 바라고 있었다. 분명 그럴 것이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그녀가, 그 소녀가 나타났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고통을 안겨준 소녀가.
유일하게 자신을 거부한 소녀가.
어째서인가.
어째서 그 소녀만은 다른 소원을 비는가.
어째서 이렇게 자신을 거부하며 아픔을 주는가.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고통을.
소녀가 준 고통을 안으며,
기억을 품에 안으며,
천사는, 땅에 떨어졌다.
“하아… 하아…”
빗자루에서 내려온 마리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끝났나?”
그리고, 다른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다친 덴 없지?”
“딱 봐도 있잖아.”
레밀리아가 자신의 잘려진 팔을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그냥 하는 소리지. 무사하면 됐어.”
하늘의 눈동자는 사라지고, 어느새 깊게 끼었던 먹구름조차 전부 물러가 있었다. 하늘은 다시, 맑은 햇빛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날씨 좋네~”
스이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때 다들? 날도 좋은데 술이나 한 잔…”
“쉿.”
사쿠야가 스이카의 입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말했다. 다른 한 손은 레밀리아에게 양산을 씌워준 채로, 스이카의 입에 댄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엔, 천사가 땅에 쓰러져 있었다.
“아직 의식은 있나 본데.”
“그런 것 같네요.”
사쿠야와 함께 천사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아야가 말했다. 천사에게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저 날개를 떨고 있을 뿐인 아주 조그만 움직임. 하지만, 적어도 천사가 완전히 의식을 잃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어쩔래? 레이무.”
마리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레이무에게로 쏠렸다. 레이무의 주변으로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레이무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다짐한듯, 레이무는 표정을 굳히고는 모두에게 말했다.
“끝내고 올게.”
그리고, 레이무는 천사에게로 다가갔다.
저벅. 저벅.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천사는 그 소리를 온몸으로 느꼈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 어느새 자신의 옆에 멈추어섰다. 천사는 희미하게 눈을 떠 자신에게 다가온 존재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흐릿하게 보이는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또 그때 그 소녀인가…
천사는 생각했다.
어느새 천사의 눈에는 비춰지고 있었다. 레이무가, 그때의 소녀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보이고 있는 모습이.
“일어나.”
레이무는 천사를 보며 말했다.
“너의 패배야. 허튼 짓 해봐야 소용없어.”
그런 건, 천사도 알고 있었다.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단순히 상처를 크게 입었기 때문이 아닌, 천사로서의 힘 자체가 약해져 있었다. 모두가 바라고, 간절히 원할수록 강해지는 것이 천사의 힘. 그것이 천사의 본질. 하지만 이제 그때의 기도는 들리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바라는 소원에, 그동안 천사가 들어왔던 소원은 들리지 않았다.
"..."
그렇기에… 다시 필요했다. 천사가 다시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필요했다. 천사를 낳은 바로 그 기도.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던 무엇보다 간절한 기도. ‘죽음을 갈망하는 마음’. 그것이 천사에게 필요했다.
천사는 떨리는 몸을 비틀어 힘겹게 레이무에게로 눈을 맞췄다. 그리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며 말했다.
“내가… 왜…”
레이무는 천사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쓰러진 천사의 손을 잡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리곤 그 손을 뻗어 천사의 손을 잡으려는 찰나,
“너의 부모를 죽인 지 아느냐.”
멈칫. 천사에게로 다가가던 레이무의 손이 멈췄다. 마치 몸이 굳은 것처럼, 본능이 앞을 가로막고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만 같았다.
레이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크게 쿵쾅거렸다. 그때의 기억.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색깔. 그 피의 냄새. 그 널부러진 시체의 조각들. 그 수많은 시체들 중에 자신의 부모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의 원수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레이무는 뻗은 손을 꽉 쥐었다. 잡을 수 있도록 펼쳐진 손은 곧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주먹으로 변했다. 주먹을 꽉 쥔 채로, 레이무는 천사에게 물었다.
“왜 그랬지…?”
“모두가 그러길 바랬으니까.”
레이무의 물음에 천사는 대답했다.
“모두가 그렇게 빌었으니까. 죽여달라고. 너의 부모를 죽여달라고. 너의 부모에게 살해당한 요괴의 가족들이, 수없이 인간에게 빼았겨온 요괴들이. 끝없이, 끝없이 그렇게 바래왔으니까.
그러니 너의 부모를 죽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요괴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의 주변에 있는 ‘인간의 적들’. 그들이 살아있는 한, 결국 또다시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겠지. 너의 부모가 죽은 그날의 일이. 그러니까…”
천사는 마치 귓가에 속삭이듯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죽음을 원한다면 간절히 빌도록 해. 그런다면, 이번에야말로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줄 테니.”
레이무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 전체가 어둠에 가려질 정도로. 푹 숙인 그 얼굴은 표정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레이무는 말이 없었다. 천사 역시도. 서로가 말없이 기다리며 시간만이 흘렀다.
이윽고, 레이무는 숙인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고개를 들어 천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사를 보며, 레이무는 입을 열어 말했다. 소원을. 레이무의 소원을 담은 말을.
“다음 연회는 하쿠레이 신사에서 열 거야.”
“...?”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 그 대답에 천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레이무를 바라봤다.
“상황이 이 모양이라 당장은 힘들겠지만, 정리가 끝나고 나면 당장 시작할거야. 이번 연회는 중요한 자리니까. 이변을 일으킨 모두가 모여서 먹고, 마시고, 서로 이야기하며 지난일을 화해하는 자리니까. 그러니까 절대 포기할 수 없어. 이건 모두가 사이 좋게 만들어가는 자리니까. 서로 싸우지 않고 다같이 어울릴 수 있게 만드는 자리니까. 이런 자리가 있어야…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레이무는 쥐었던 주먹을 다시 폈다. 그리고는 그 손을 다시 한 번 쭉 뻗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와. 밉지만, 그런다고 해결 되는 건 아니니까.”
힘이, 전혀 돌아오지 않았다. 죽음을 바라는 마음이 없었다. 레이무가 바라는 소원에,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는 마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들어본 적 없는 기도. 바래본 적 없는 소원. 단 한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소원.
천사는 몸을 축 늘어뜨렸다. 멍하니 레이무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올곧고, 망설임 따윈 없는 표정을…
천사는 이내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온몸에 힘을 빼고 땅에 편하게 기댔다. 그리고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나긋하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였어… 나 역시도 바라게 된 건.”
천사의 말에 레이무는 누워있는 천사를 보며 물었다.
“바랬다니…?”
천사는 대답이 없었다. 그리곤, 레이무는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 듯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설마! 마지막에 빛났던 그 음양옥…!”
레이무의 반응에 천사는 그저 입가에 살며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너였어…?”
“...”
천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평온하게 미소 지으며 누워있을 뿐. 레이무 역시도 그런 천사를 보며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천사는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천사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힘겹게, 상처와 고통에 옅은 신음을 새어내며 천천히 상체를 들어올렸다.
레이무는 천사를 부축해주기라도 하듯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천사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손을 잡지 않고 힘겹게, 힘겹게 그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레이무가 건넨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같이 갈 수 없어.”
“...”
그리고, 천사는 레이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내가 바랬던 소원이 아니었으니까.”
천사와, 레이무의 눈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 서로의 숨결이 닿을 듯이 가까운 거리. 천사의 차갑고도 아름다운 눈빛과 레이무의 당혹스러운 눈빛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어느새 레이무의 눈앞에, 조금씩 하얀 깃털이 흩날렸다.
“너…!”
레이무는 흠칫하며 고개를 뒤로 내뺐다. 그리고는 시선을 천사의 몸으로 향하며 물었다.
“몸이…”
천사의 몸이 부서지고 있었다. 몸이 바스라지고, 바스러진 파편이 새하얀 깃털로 변해가며, 바람을 타고 레이무의 눈앞에 흩어져가고 있었다.
천사는 레이무에게로 얼굴을 더욱 가까이 들이댔다. 마치 사라져가는 자신의 몸을 보지 못하게 하려듯이. 그 아름다운 얼굴을 가까이 대며, 천사는 레이무에게 말했다.
“나는 맡은 역할이 끝나면 죽을 몸.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어.”
“그치만…”
천사는 레이무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은 레이무에게 닿아, 상냥하게 레이무의 뺨을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손길. 천사의 손길에 닿아도 죽음은 전해지지 않았다. 레이무를 보며, 천사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하나만 말해도 될까?”
사라져가는 몸. 꺼져가는 생명. 죽음을 눈앞에 둔 천사는 말했다. 그 목숨이 다하기 전, 천사가 원하는 것은 그저 레이무에게 한가지 말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레이무는 천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의 얼굴이 레이무에게로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얼굴에, 그 뺨에, 천사는 다가가 살며시 입맞추었다. 부드러운 감촉. 전혀 차갑지 않은 따뜻하고 상냥한 감촉. 천사는 레이무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죽어서라도, 몸이 바스라져 가면서라도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소원을. 천사의 소원을 담은 말을.
“...”
레이무의 눈앞에, 새하얀 깃털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답게 흩날리는 깃털을 따라 레이무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퍼져나가는 깃털. 천사의 마지막 흔적. 그 아름다운 모습이 하늘의 빛을 받으며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마지막에, 천사의 얼굴은 미소짓고 있었다. 편안하게 웃으며 모든 것에 만족하는 미소. 그리고 그 미소로 전한 소원. 레이무는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사의 소원을 떠올리며, 마지막 하나의 깃털까지도 멀리 날아갈 때까지.
“어이~! 레이무!”
연회의 중심. 마리사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축제의 소리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모두가 모여 있었다. 마리사도, 레밀리아도, 스이카도, 사쿠야도, 아야도, 그리고 다른 모두들도. 모두가 한곳에 모여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또, 그들 모두가 레이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빨리 오라구~! 오늘의 주인공이잖아!”
“알았어~ 금방 갈게.”
레이무는 모두가 있는 곳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레이무는 줄곧 보고있던 상자 안으로 다시 시선을 향했다. 그 안엔, 음양옥이 넣어져 있었다. 모두의 소원을 담은 음양옥. 모두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을 담은 음양옥이,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레이무는 그것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무는 품속을 뒤졌다. 그리고 옷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새하얗게 빛나는 깃털. 천사가 사라질때 옷속으로 흘러들어간 하나의 깃털이었다. 레이무는 그것을 들고 줄곧 바라보았다.
레이무는 문 밖을 힐끔 쳐다보았다. 연회의 한창. 그 안의 모두가, 웃고 있었다. 인간도, 요괴도, 다른 그 누구라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짓고 있었다.
천사가 마지막에 그런 말을 했다는 건… 그녀 역시도 이걸 바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모두가 웃고 있는 모습을. 싸움이 아닌 모두의 웃음이 가득한 세계의 모습을.
레이무는 천사의 깃털을 음양옥이 들어있는 상자 안에 같이 넣었다. 음양옥과 깃털이 나란히 놓여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레이무는 상자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상자를 구석 깊은 곳으로 밀어넣고는, 레이무는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벅터벅. 레이무는 신사 밖으로 걸어나갔다. 반쯤 열려있던 문을 활짝 열고, 연회의 들뜬 소란과 열기를 온몸으로 맞이했다.
“오~! 온다!”
“레이무! 빨리 빨리!”
“알았어~ 간다 가.”
모두의 손짓에 레이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지었다. 모두의 재촉을 받으며, 모두와 같이 웃음 지으며, 레이무는 연회의 중심으로 향했다.
모두가 빌었다.
모두가 언제나 원했다. 이렇게 행복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걸 위해 그들이 빌어온 것은 언제나 죽음뿐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자신을 위한 다른 이들의 죽음. 그것만이 나에겐 세상의 전부였었다.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한번만, 죽기 전에 딱 한번만, 나도 소원을 빌 수가 있다면… 나도 이런 소원을 빌어도 괜찮지 않을까.
나도 보고 싶었으니까.
네가 만든 세상을.
모두가 웃으며 살아가는 세상.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
내가 없어도 되는, 죽음의 천사 따윈 필요없는 세상을.
그러니까…
“들어줄 수 있겠지?”
소녀의 뺨에 입맞추며 귓가에 속삭였다. 마지막으로 보여지는 얼굴. 입술에 느껴지는 뺨의 감촉. 그 모든 것을 감싸며.
“부탁할게.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나의.
“세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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