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시간. 나는 바닥에 옆으로 누워 과자를 입에 집어넣으며 신문을 넘겼다. 신문은 운잔도 같이 볼 수 있도록 살짝 비스듬히 놓고서는 또 한 페이지를 옆으로 넘겼다.
꽤나 한가로웠다. 오늘은 마당 청소도 끝냈고, 불상 정리도 다 했고, 나머지 잡일들은 대충 쿄코한테 떠넘기면 된다. 그렇기에 하는 거라곤 이렇게 재미없는 신문이나 보며 하품하는 것뿐이었다. 할 일도 없고, 심심하기만 하고, 슬슬 머리를 받치고 있던 팔까지 저려오던 참이었다.
“이보게, 잠깐 심부름 하나 하지 않겠나?”
“으엣? 깜짝이야?”
나는 화들짝 놀라 입에 물고 있던 과자마저도 떨어뜨리며 말했다. 갑자기 튀어나오며 말한 탓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눈앞엔 우리 명련사의 너구리 요괴, 마미조가 코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심부름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요?”
“늦은 시간이니까 부탁하는 거지. 주지승한텐 비밀이여.”
마미조는 쉿. 이라고 말하듯 입에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리곤 금세 밖으로 나가며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나랑 운잔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의아해하고는 금방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뭔데요?”
“쪼메 어려운 건디, 들어주겠나? 들어주면 지난번 애들끼리 몰래 술 마신 건 비밀로 해줄테니께.”
“아… 알고 계셨어요?”
“너구리들의 정보력을 우습게 보지 말어. 심부름만 해주면 창고에 다 마신 술도 다시 넉넉하게 채워주지. 물론 그것도 비밀로 해주고.”
“읏… 그러죠 뭐.”
마미조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계속해서 앞을 걸어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어두운 밤길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마미조를 뒤따라 나온 지 제법 시간이 지나 우리는 절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는지 마미조는 더욱더 풀숲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한참을 말없이 걸어가기만 하는 마미조에게 내가 물었다.
“곧 도착혀. 그 전에, 같이 갈 사람이 한 명 있으니께.”
“심부름 가는 데 한 명이 더 필요한 거예요?”
“그려.”
그리고, 마미조는 곧바로 제자리에 멈추어 서며 말했다.
“아, 저기 와있구만.”
마미조가 저 멀리 누군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누군지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그 모습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 쪼그만 키와 머리에 쓰고 있는 길쭉한 모자, 그리고 전체적인 도교 차림의 복장. 그 녀석은…
“네가 왜 여기에!”
녀석의 얼굴을 보자마자 내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네놈이 왜 여기에!”
그와 거의 동시에 상대 쪽에서도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둘은 서로에게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한 채로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상황 파악이 된 듯 타깃을 마미조에게로 바꾸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너구리 요괴? 협력자를 데려온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데려온다고…”
“잠깐만요. 지금 나랑 이 녀석이랑 같이 가라고? 그것도 심부름을?”
우리 두 사람의 거친 항의에 마미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음? 둘이 친하지 않았던감?”
“아닐세!”
“전혀요!”
나와 후토가 동시에 말했다. 하지만 마미조는 그런 건 별 중요한 게 아니란 듯 여전히 변함없는 태도로 말했다.
“뭐… 친하든 친하지 않든 이번 일을 할 수 있는 건 두 사람 뿐이여. 다른 녀석들은 밖에 나가본 적이 없으니께.”
“...밖이요?”
마미조의 말에 내가 물었다.
“그려. 두 사람은 가본 적 있잖여? 밖에.”
마미조는 ‘밖’이라는 단어에 특히 힘을 주며 말했다. 그렇기에 어딘가 짚이는 점이 있었다. 나와 이 녀석이 똑같이 나가본 적이 있는 ‘밖’이라는 곳. 지난 오컬트 볼 사건 때 우연히 나가져 버렸던,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
“엣? 심부름이란 건 설마…”
“그려.”
마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후토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 앞의 결계 밖으로 나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 오면 되는 것이여. 어디서 뭘 살지는 이미 메모에 다 적어 놓았으니께. 자, 받으라고.”
마미조는 내 손 위에 두 개의 물건을 건네주며 말했다. 하나는 짤그락 소리가 나는 것이 아마도 돈이 들어있는 주머니,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바깥 세계의 길을 그려놓은 듯한 지도였다.
“바깥에 나가는 일이라면 저희한테 시킬 필요도 없잖아요. 평소에도 자주 왕래하면서 직접 가시면 되지.”
내 물음에 마미조는 잠시 굳은 듯이 손이 멈칫했다.
“아, 그게…”
마미조는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실은 현자들한테 출입 금지를 당해부렀거든. 하도 허락 없이 들락거린다고 해서. 내가 나가면은 바로 감지 센서에 걸려부러. 헤헤.”
마미조는 잘못을 들킨 어린애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태도를 보아하니 현자들한테 잔소리 들으며 혼나기라도 한 걸까. 이럴 때 보면 그냥 어린아이 같았다.
“그나저나, 자네가 말한 그 결계를 넘는 방법이라는 건 어디 있는 건가? 이곳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 두 사람의 대화에 후토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런 후토의 물음에 마미조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응? 바로 앞에 있잖여.”
마미조는 그렇게 말했다. 마미조의 말에 나와 후토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앞에 결계인지 뭔지 하는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건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어두운 밤하늘뿐이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만.”
“혹시, 강력한 힘으로 둘러싸여 우리 눈으론 볼 수 없는 건…”
“거기 말고, 그 아래여. 아래.”
마미조의 손짓에 따라 우리 둘은 동시에 시선을 밑으로 스윽 내렸다. 그리고, 거기엔 작은 구멍 하나가 휑하니 뚫려 있었다.
“에?”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개구멍. 헛웃음조차 안 나올 정도로 초라한 구멍이었다.
“설마 이거에요…? 여길 통해서 바깥 세계로 나간다고?”
“비밀 통로니께.”
마미조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이가 없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결계를 겨우 이런 하찮은 구멍을 통해 나간다고? 뭐, 그 말대로 그러니까 비밀 통로겠지만.
“정말 여기로 가면 나갈 수 있는 건가…?”
후토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인상을 찌푸리며 의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뭔가 믿음이 안 가는데요.”
“비밀 통로니께!”
“아, 알았어요. 갈게요. 여기로 가면 되잖아요.”
마미조의 호통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개구멍 안으로 들어갈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역시나 가까이에서 봐도 너무나 하찮은 구멍이었다. 나는 어설프게 구멍을 감추고 있는 풀들을 옆으로 걷어냈다. 그리고 몸을 숙여 구멍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잠깐.”
마미조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놈은 두고 가야지.”
마미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내 옆을 따라 개구멍으로 들어가려던 운잔이었다.
“운잔을요…? 왜요?”
“그걸 몰라서 묻는겨? 안에 들어갈 수가 없잖여!”
마미조가 운잔에게 손가락질으로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하긴, 마미조의 손가락이 하찮게 보일 정도로 운잔의 크기는 거대한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구멍을 무사히 통과해 나간다 해도 밖에 이만한 크기의 분홍구름에 떠다니면 누구나 수상하게 볼 게 뻔했다. 운잔도 그걸 아는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지만 그렇다면…
“잠깐, 그럼 심부름을 다녀오는 건 나랑 이 녀석 단둘뿐?”
나는 내 옆에 멍청하게 서 있는 후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려.”
최악의 대답이었다.
“으아아악.”
“싫은 소리 마라 요괴 놈! 이 몸도 좋아서 너네랑… 으악!”
나는 후토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시끄럽게 쫑알대는 게 주먹이 절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심부름 따위 진작에 거절했을 텐데. 이럴 바엔 차라리 술 마신 걸 들키고 히지리 언니한테 한 대 맞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아닐 수도.
“혼자 다녀올게.”
나는 운잔을 옆으로 밀어내면서 말했다. 운잔은 늘 그랬듯이 낯선 곳에 혼자 가면 위험하다는 등의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래봐야 늙은 세대의 흔한 노파심일 뿐이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다시 개구멍 속으로 몸을 숙였다.
아마 이번엔 평소처럼 멋대로 따라오진 못할 거다. 자기보다 훨씬 강한 요괴인 마미조가 구멍 앞에 눈을 부릅뜨고 서 있으니까.
“내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께, 일을 마치면 이곳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여. 돌아올 때도 지도를 참고하고.”
“네에~ 알았어요.”
나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개구멍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풀잎으로 덮어져 있어서 그런지 어둡고 습한 게 영 기분 좋은 곳은 아니었다.
“자, 자네도 얼른 들어가야지.”
마미조가 후토의 등을 팡팡 치며 말했다.
“아… 알았네. 알아서 갈 테니까 밀지 말게나.”
이윽고 마미조에게 떠밀려온 후토가 내 뒤를 따라 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기어갔다. 아니, 오히려 녀석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더욱 빨리 기어갔다. 둘이 딱 붙어서 이런 좁은 길을 지나고 싶진 않았다.
그나저나, 이 구멍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걸까. 밖에서 볼 때는 전혀 길어 보이지 않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오니 끝도 없이 한참을 이어져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찌 됐든 덕분에 비밀통로라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나는 어느새 눅눅한 흙바닥이 아닌 딱딱한 인공물의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기어간 나는 마침내 어느 구멍 밖으로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곳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개구멍. 다만 그 구멍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은 건물 밑바닥에 나 있었다는 점에서 여기가 환상향이 아닌 다른 곳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제대로 온 건가?”
나는 구멍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허리를 펴고 주변을 살폈다. 어둡고 사방이 꽉 막힌 골목길인데다 높은 건물에 하늘까지 가려져 숨이 턱턱 막히는 곳이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환상향의 바깥 세계는 원래부터 공기가 답답했다.
나는 골목을 빠져나가 최대한 넓은 곳으로 향했다. 어두운 골목과는 달리 사방이 탁 트인 곳으로. 그리고…
“이, 이건…”
나는 그만 그 앞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 순식간에 광대한 빛, 그리고 수없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왔다. 너무나 반짝이는 빛.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들어선 건물들. 그리고 무엇보다 셀 수도 없이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들.
바깥 세계. 누가 봐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곳에 나는 와버린 것이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으익.”
뒤늦게 개구멍… 아니, 결계를 넘어 밖으로 빠져나온 후토가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소리 질렀다. 시작부터가 고난이었다. 굳이 꼭 이렇게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야 하는 걸까.
“전보다 더 화려하지 않은가! 불빛도 많아지고! 사람도 많아지고! 뭔가 두근거리지 않는가!”
“아잇. 시끄러! 그보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눈에 띄어선 좋을 게 없다고!”
나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후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 눈을 피해 처음 들어왔던 골목 쪽으로 끌고 들어가 녀석에게 말했다.
“잘 들어. 최대한 눈에 안 띄고 빠르게 처리해서 돌아가는 거야. 알았지?”
나는 후토의 얼굴에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웁웁.”
후토는 입이 막힌 채 고개를 힘차게 두 번 끄덕였다.
“소리지르지도 말고?”
“웁웁.”
후토는 이번에도 고개를 두번 끄덕였다.
“좋아.”
나는 입을 막고 있던 손을 치워주었다. 후토는 후아… 하며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래서, 우린 이제 어떡하면 되는 건가?”
나는 마미조에게서 받은 지도를 펼쳐보았다.
받은 지도에는 현재 위치로부터 목적지까지의 길이 빨간 선으로 그어져 있었고 도착지에는 X표시까지 쳐져 있었다. 나는 목적지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여기로 가면 될 거야. 내가 앞장 설 테니까 한눈팔지 말고 따라와.”
나는 골목 밖으로 나서며 목적지를 향해 앞서갔다. 곧이어 후토도 뒤따라 나오며 뾰루퉁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왔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것 치고는 바깥 세계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밤인데도 사방이 빛으로 반짝거려 거리가 잘 보이기는 했지만, 반대로 그 빛들 때문에 오히려 어디가 어디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건물들도 다 똑같이 생긴 탓에 길을 잘못 들기를 몇 번, 또 그렇게 왔던 길을 돌아가기를 몇 번. 환상향과는 너무나 다른 밤길은 그대로 길을 따라가는 것조차도 너무 어려웠다.
아니, 이곳에서 길 찾기에 가장 방해되는 것은 높게 솟은 건물이나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불빛 따위가 아니었다. 인간이었다. 밤인데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인간들이 길거리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부딪히고 눈앞의 시야를 가리는 것은 물론, 몇 번은 인간들에 파묻혀 길을 잃어버릴 뻔하기도 했다. 해가 진 어두운 밤에 이렇게 많은 수의 인간들이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거북함마저 들었다. 인간들 속에 요괴가 걸어 다니고 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모두들 요괴 같은 것에 겁먹지 않고 밤길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 점이 가장 거북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이상한 점일까. 생각해보면, 예전엔 나도 이런 인간들 중에 하나였는데…
“천천히 좀 가게. 따라가기 힘드네.”
“안 따라와도 되는데.”
나는 사람들 사이에 이리저리 치여가며 뒤따라오는 후토를 보며 대답했다.
“힘들면 돌아가 있어. 나 혼자 할 테니까. 아니, 애초에 넌 여기 뭐 하러 온 거야?”
어쩌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질문을, 나는 이제 서야 물어보았다.
“태자님께서 부탁하신 일일세. 현자들 몰래 바깥 세계를 살펴보고 오라고 하셨네.”
“뭐 때문에?”
“바깥 세계의 뛰어난 기술로 우리 도교를 발전시킬 걸세. 그렇게 되면 분명 우리 교의 다른 사람들도 훨씬 살기 좋게 되겠지.”
후토는 우월감을 느끼듯이 팔짱을 끼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에 표정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쳇. 다른 사람은 무슨. 이번에도 또 자기 좋을 대로만 이용해 먹겠지. 그 위선자 녀석.”
나는 불평거리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괜히 했다고 후회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감히 태자님을 모욕할 셈인가! 이이잇 요괴놈이!!”
급발진이란 건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인가. 후토는 갑자기 허공에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내게로 달려들었다.
“얌전히! 제발 얌전히 좀 있으라고!”
나는 내게 달려드는 후토의 주먹을 막아 세우며 말했다. 그 탓에 또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렸다.
이 도움 안 되는 녀석이. 눈에 띄는 짓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맞받아치라면 못할 것은 없었다. 이 녀석과 싸운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내가 힘에서 밀리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바탕 난리를 치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우선 일을 무사히 끝내는 게 먼저였다. 반격이 없는 내게 후토는 계속해서 달려들었고, 나는 그런 후토를 막아 세우며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한참을 둘이서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던 찰나.
“자, 잠깐!”
나는 잡고 있던 후토의 팔을 손에서 떼어 놓았다. 후토는 그대로 허공에 팔을 휘두르며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으악! 이… 이 요괴놈이…”
“다 왔어. 저기야.”
나는 후토에게 저 멀리 가게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가게 역시 야밤에 지나치게 반짝거리고 있다는 점은 다른 건물들과 다를 게 없었지만, 간판에 커다랗게 쓰여 있는 글자가 마미조의 지도에서 본 것과 똑같았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편의점’이라고, 간판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저기인가? 우리의 임무를 완수할 곳이?”
후토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까까지 자기가 했던 짓은 까맣게 잊은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애. 내가 가서 사 올게.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후토에게 지도를 건네주며 말했다.
“쓸데없는 짓 말고 내가 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야 해? 어디 가지도 말고?”
“알고 있네. 이 몸은 어린애가 아닐세.”
후토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했다. 뭐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나는 후토로부터 등을 돌리고는 그대로 가게 안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따릉, 하는 소리와 함께 점원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를 맞이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돌려 무시했다. 나는 곧장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목표물인 물건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진열된 물건들은 죄다 환상향의 가게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다른 것들뿐. 다양하고 많은 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뭐가 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중에서 내가 뭘 사야 할지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다시 가게 입구 근처에 있는 점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처음 봤던 것처럼 나 역시도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저기요~”
“네~”
나는 주머니 속 메모를 꺼내 거기에 적혀있는 것들을 점원에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점원은 뒤쪽에 있는 진열대에서 물건을 몇 번 뒤적이더니 금방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거 맞으세요?”
나는 점원이 내민 물건을 확인했다. 모양이나 그림으로 보아선 담배 같았다. 안 그래도 마미조가 얼마 전부터 바깥 세계의 연초가 훨 좋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겨우 이런 일로 심부름을 시켰던 건가.
“네. 아마도요. 그걸로 주세요.”
뭐, 됐다. 나는 점원에게 대답하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어찌 됐든 이걸로 임무는 완수한 거다. 이제 남은 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만 하면…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네?”
돈을 건네려던 내 손이 멈춰섰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멀뚱멀뚱 점원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점원도 멀뚱멀뚱 내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가게 안에는 어느새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멍하니, 서로 아무 말 없는 시간만이 흘러갔다.
“...그래서, 실패했다는 건가?”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후토가 내게 물었다.
“신분증이 뭔지 알아야지. 그런 건 돈주머니에도 안 들어 있다고.”
나는 돈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짤랑거리며 말했다. 편의점 밖으로 나온 이후, 우리 둘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어서 편의점 안의 목표물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계속 노려보기만 한들 이렇다 할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가게 안에서의 점원의 태도는 확실했다. 신분증이란 게 없으면 목적인 물건은 절대로 내놓지 않을 것이었다.
“다시 너구리 요괴에게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나? 이대로 있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결국 후토가 꺼낸 말은 기운 없이 한숨을 내쉬며 뱉은 말이었다. 그렇게 힘 빠지는 모습인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그리 편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성과조차 없으니까. 그리고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그 거북한 기분을 참고 인간들이 득실대는 길을 돌아갔다 다시 오라고? 그것만은 사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훔친다.”
“엣. 그, 그래도 되는 건가…?”
“바로 눈앞에 있잖아? 저런 건 금방 가지고 나오면 된다고.”
제법 걱정스러워하는 후토에게 나는 편의점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에 물건이 저렇게 많은데 사람은 한 명뿐이야. 저 많은 걸 혼자서 지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훔치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나는 후토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리고 후토는 내 말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은 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말했다.
“알겠네. 그럼 내가 저 건물에 불을 지르고 나오는 건 어떤가? 자네는 혼란한 틈을 타서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나오면…”
“제발 의견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 녀석에게 뭔가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다. 다루기는 쉽지만, 너무 자신감을 주입시키는 것도 조심해야 할 듯했다.
“우선 네가 먼저 들어가서 녀석의 주의를 끌어. 나는 이미 얼굴이 알려져서 안 되니까. 그리고 내가 물건을 훔치고 신호를 보내면 그 즉시 동시에 도망치는 거야. 알았지?”
“알았네.”
순진한 건지 바보인 건지, 후토는 금세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여기 돈주머니 받아. 가서 이걸로 물건을 사는 척 주의를 끌어.”
“알겠네! 맡겨만 주게!”
후토는 내게서 돈을 받고는 곧장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 역시 그 이후 약간의 시간 간격을 두고 후토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문 앞에 있던 점원은 이미 후토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뒤였다. 후토 녀석이 계획대로 잘 유도한건지 아니면 진짜로 사고 칠만한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에 원래 점원이 지키고 있던 담배 진열대는 무방비한 상태였다. 나는 그 진열대에서 아까 봤던 것과 비슷한 것들을 서너 개를 빼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이 정도면 됐을까.’
담배는 주머니가 가득 찰 정도로 넣었다. 이만하면 충분할까. 아니면 조금 더 넣을까. 어느 쪽을 선택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앗! 거기…”
뒤늦게 점원이 나를 눈치채며 말했다. 나 역시도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다만, 이미 물건은 충분히 챙길 만큼 챙긴 뒤였다. 나는 점원과 마주친 눈길을 자연스레 그 옆에 있는 후토에게로 옮겼다. 그리고 후토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진열대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도망쳐!”
문을 박차는 소리. 따릉거리다 못해 찰랑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와 후토가 가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점원이 미처 한마디를 내뱉기도 전에 벌어진 순식간의 일. 우리 스스로가 봐도 놀라울 정도로 재빠른 반응이었다.
“잘 있게!”
“됐으니까 달려!”
나는 후토에게 소리치며 전력으로 질주했다. 가게에서 나온 이후 우리는 밤길 속을 달리고, 또 달렸다. 빛나는 밤길을 헤쳐나가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치이며 파고들고. 어느새 가게도, 사람들도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까지 도망쳐왔다.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거리까지 오고 나서야 우리들은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돌렸다.
“거 봐. 별거 아니잖아. 그렇지?”
나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후토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녀석은 싫지만 매번 뭔가를 할 때마다 팀워크는 잘 맞는다. 이번에도 작전은 대성공. 분명 이번에도 후토는 잔뜩 들떠서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실컷 떠들어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괜히 무시하는 척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어째서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후토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어라?”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후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무사히 도망치는 것까진 확인했었는데, 그 이후로 길이 엇갈려 다른 방향으로 가버린 건가. 문득 혼자 신나서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달리는 후토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하여간~ 그 자식, 잘 좀 따라올 것이지. 길 잃어버리고 미아가 되도 난 모른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 역시도 도망칠 생각만 하며 무작정 달린 탓에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와버렸다. 우선은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아야 했다.
나는 지도를 펼쳐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내 손에 집혀 나오는 건 지도가 아닌 작은 담뱃갑 하나. 나는 재빨리 반대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졌다. 하지만 그 반대쪽 주머니에서도, 옷의 안쪽에서도, 옷 곳곳을 아무리 뒤져봐도 집히는 건 오직 담뱃갑뿐이었다.
“아, 지도… 그 녀석한테 맡겼었지…”
사태 파악이 되며 한순간에 기분이 싸늘해졌다. 지도뿐만이 아니었다. 주머니도, 그 안의 돈도, 전부 그 녀석한테 맡겼었다. 지금의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채로 어딘지도 모를 곳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럼 설마 길을 잃어버린 건, 이 낯선 세계에서 미아가 되어버린 건…
“...난가?”
몸이 굳은 듯이 정지. 그리고 부끄러움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조금 전까지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후토의 모습이 사실은 내 모습이었던 건가.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떨쳐내듯 고개를 홱홱 내저었다.
“돼, 됐어. 난 그런 거 없이도 찾아갈 수 있어.”
헛기침을 몇 번. 그리고 나는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길을 찾아야 된다고는 하지만 실은 겨우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만 하면 될 뿐이다. 멍청한 후토와 달리 나는 그 정도는 지도 없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분명,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대체 몇 시간째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걸음을 멈추고 허탈함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체 바깥 세계에 온 지 얼마가 지난 걸까. 환상향 결계를 넘어 밖으로 나왔을 때가 저녁 시간쯤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못해도 새벽은 되는 시간이다. 그 정도로 돌아다녀 봤는데도 아무리 찾아봐도 왔던 길이 보이질 않는다.
내가 이렇게 길치였던 건가. 항상 운잔이랑 같이 하늘을 날며 길을 찾아다녔기에 몰랐었다. 지금은 운잔도 없고, 갑자기 하늘로 날아갔다간 사람들 눈에 띄어 무슨 취급을 당할지 모른다. 안 그래도 높게 솟은 건물들이 죄다 번쩍거려 금방 눈에 띌 게 뻔한데, 이런 늦은 시간까지도 인간들은 밖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참아야 했다. 그런 인간들의 눈에 띄어선 안 됐다. 지금의 난 평범한 인간인 척해야 하니까, 그런 짓은 해서는 안 됐다.
“하아…”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교 대상이 있으니까 더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은 지금쯤 먼저 돌아갔겠지. 지도를 갖고 있으니까. 그에 비해 나는 이렇게나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고 있으니 지금쯤 다른 명련사 식구들이 걱정하고 있을 거였다. 나도 서둘러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다짐을 하고, 다시 걸음을 떼고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거기 잠깐!”
“읏.”
뒤에서 튀어나온 목소리에 나는 몸을 움찔하며 돌아봤다. 하지만 목소리보다 나를 더 당황하게 한 것은 나를 부른 두 사람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의 옷차림을 보고는 그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인간 세계에서는 경찰이라고 불리는 것들. 바깥 세계에서는 그들이 무녀같이 누군가를 때려잡는 존재였다. 그들은 내게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잠시 물어볼 게 있는데.”
“뭐죠…?”
두 사람은 서로 몇 마디를 속닥거리며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역시 맞잖아? 신고자가 말한 외형이랑 완전히 일치해.”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쳐 달아났다는 도둑, 맞지?”
이런. 벌써 얘기가 다 퍼진 모양이었다.
“아, 아니. 그게…”
경찰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갈수록 매서워졌다. 여기서 변명을 해봐야 어차피 사실이기 때문에 할 말도 없었다. 이럴 땐 화제를 바꾸는 게 제일이었다.
“사실 제가 길을 잃어버렸거든요. 아저씨들이 제 길 좀 찾아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불쌍한 척 표정과 목소리를 바꾸면서 말했다.
“...길?”
“네. 제가 여기 길은 잘 몰라서.”
“어디로 가는데?”
“그거라면 이걸 보시면 돼요. 여기 길을 표시해둔 지도가 있거든요. 자!”
나는 자신 있게 주머니에서 꺼낸 것을 내밀며 말했다. 하지만, 내 손 위에 올려져 있는 건 작은 담뱃갑 하나뿐이었다.
‘아, 이런.’
“...”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할 일은 하나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달렸다.
“잡아!”
“서라! 도둑놈!”
이게 아닌데. 나는 전력으로 도망가며 생각했다. 인간들에게 쫓긴 적은 예전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땐 요괴 퇴치를 목적으로 쫓긴 거였다. 그땐 평범한 인간이던 나를 요괴라 부르며 쫓아오길래 싫었지만, 이번엔 요괴도 아니고 도둑이라고 부르며 쫓아오고 있었다. 물론 맞긴 하지만. 환상향에서 넘어온 요괴인 나를 어디에나 흔히 널린 잡도둑 취급하는 건 싫었다.
“거기 서라!”
경찰들의 외침을 피해 나는 방향을 틀어 골목길 쪽으로 들어가 달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높은 벽으로 가로막혀있는 막다른 길. 오고가도 못하는 제대로 꽉 막힌 길이었다. 그 많은 길 중에 왜 하필 여기일까. 다시 한번 느끼지만 내가 이렇게 길치인지 몰랐다.
“겨우 잡았네. 애 먹이기는.”
어느새 경찰들이 골목 입구를 막고 포위하며 말했다. 그동안 쫓아오면서 다른 동료들에게 알리기라도 한 걸까. 어느새 사람 숫자도 늘어나 있었다.
“체포해.”
그의 묵직한 말 한마디에 몇 명의 사람들이 내 주변을 둘러쌌다.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몸을 붙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 손목에 철컥, 하고 수갑을 채웠다.
“그러게 순순히 협조할 것이지.”
“알았지? 또 도망치면 그땐 세게 나갈 거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수갑. 천 년 전 인간들이 나를 봉인할 때 썼던 물건이었다. 모양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그때도 이런 물건으로 나를 묶어놨었다. 그때도 인간들에게 미움받고 요괴가 되어… 천년을 넘는 시간을 갇혀 있었다. 그땐 그러려니 했지만, 이번만은 그럴 순 없었다. 돌아갈 곳이 있는데 다른 어느 곳도 아니고 바깥 세계에서 인간들에게 봉인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더 일이 꼬여야 하는 걸까. 이젠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잡도둑 취급받는 것도. 평범한 인간인 척하는 것도.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이젠 이 방법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덥석, 내 옆에 있던 덩치 큰 인간의 멱살을 잡고 힘껏 들어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인간은 공중을 한 바퀴 붕 돌며 그대로 바닥에 무참히 내동댕이쳐졌다.
“휴우…”
모두의 놀란 듯한 표정.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집중된 한가운데서 나는 보란 듯이 그들이 채운 수갑을 뜯어 풀어헤쳤다. 특별한 기술을 쓴 것도 아니다. 그냥 가볍게 힘을 준 것만으로도 수갑은 금방 산산조각이 났다.
“봤지? 이만 물러가. 또 덤비면 그땐 세게 나갈 테니까 조용히 가라고.”
나는 넋을 잃고 쳐다보는 인간들을 보고 손을 탈탈 털며 말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천 년 전과 다르게 이곳 세계의 수갑엔 어떠한 봉인의 힘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요괴가 낯선 바깥 세계의 인간들이니 요괴 상대법을 모르는 걸까. 아무리 체격이 좋은 인간이라도 요괴 앞에선 그저 한주먹거리에 불과했다. 도구 역시도, 아무리 단단한 도구라도 겨우 이 정도로 요괴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인간과 요괴 사이에는 메꿀 수 없는 근본적인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니 그걸 처음 본 바깥 세계의 인간들은 환상향의 인간보다 몇 배는 더 두려움에 떨고 도망치는 것도 당연했다.
분명 그럴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잡아!”
바깥 세계의 인간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몇 명이 더 가세하여 달려들어 나의 팔과 다리를 제압했다.
“뭣!?”
나는 그것들을 뿌리치며 저항했지만 그럴수록 인간들은 더욱더 내게 달려들며 나를 붙잡았다.
“끈질기게…”
이상했다. 분명 요괴의 힘을 보여줬는데, 인간들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아니, 겁먹지 않았다기보단 뭐랄까…
“조심해! 보기보다 힘이 세!”
“못 움직이게 잡아!”
인간들은 내 팔을 붙잡으며 또다시 강제로 손에 수갑을 채웠다. 쓸데없는 짓. 나는 이번에도 아까와 같이 팔에 힘을 주어 수갑을 풀어 헤치려 했다. 하지만… 수갑은 풀리지 않았다.
“...왜?”
인간들은 나를 바닥에 눕히고 힘으로 몸을 짓눌렀다. 그 짓눌리는 힘에 전혀 거역할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완전히, 요괴인 나는 맨손인 인간들에 의해 제압당했다.
“자, 잠깐! 이건 뭔가 잘못됐어! 난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요괴…”
“시끄러! 얌전히 있어!”
인간들은 나를 더욱 세게 짓누르며 소리쳤다. 나는 간신히 고개만을 들어 나를 내려다보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여기 왔을 때부터 줄곧 느껴졌던 거북함의 정체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은 요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요괴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요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 그런 건 당연히 없다고 믿는 모습이 그들의 표정에 드러나 있었다.
나는 본래 인간의 몸이었던 요괴. 오로지 남들이 요괴로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남들이 나를 인간으로 보고 있다. 오직 남들이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 나는 그 눈동자 속의 모습과 똑같아져 버렸다.
“안돼…”
힘도, 요력도, 그 어느 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늘을 날아보려 했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러기는커녕 나를 짓누르고 있는 인간 하나조차도 뿌리치지 못했다. 인간들은 나를 일으키곤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며 반항하는 것도 잠시뿐. 나는 금세 제압되어 그들에게 끌려갔다.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비해 나는 너무도 무력했다. 언제나 그랬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이제 나는 어떻게 걸까. 또다시 봉인되는 걸까. 찾아와 줄 사람 한 명 없는 바깥에서? 얼마나? 몇 년 동안? 아무리 생각해봐도… 빠져갈 방법 따윈 생각나지 않았다.
“도와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지막이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때.
“불이야!”
눈앞이, 한순간에 붉은색의 빛으로 환하게 물들었다.
“뭐야? 어디서 갑자기!”
“지금 그게 중요해? 불부터 꺼!”
순식간에 사방을 뒤덮은 불길에 나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나만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사납게 타오르는 불길이 나에겐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손 잡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불길 속에서 뻗은 손이 내게로 내밀어졌다.
“잡으란 말일세!”
나는 수갑이 채워진 두 팔을 뻗어 내게로 내민 손을 붙잡았다. 그 손은 순식간에 나를 끌어당겨 불길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 손은 나를 감싸고, 곧 몸이 떠오르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나를 감싼 그 품을 세게 끌어안았다. 불 속에 오래 있었던 탓일까. 그 품속의 온기가 뜨거울 정도로 따뜻했다.
…맑은 날씨. 대낮의 햇볕을 받으며 나는 절의 마루에 누워있었다. 다만 햇빛과는 등을 돌린 채, 그림자 진 벽만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 내내 혼자 이러고 있었다. 환상향으로 돌아오자마자 몸의 상태는 회복되었고 요력도 전부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째선지 아무런 기운도 나지 않았다. 모두의 걱정을 뒤로하고 혼자 있겠다고 말한 게 오늘 아침. 그 뒤로는 계속 이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
“옆에 앉아도 되겠는감?”
마미조의 목소리. 그리고 이어서 무언가를 몇 개 내려놓는 소리도 들렸다.
“약속했던 보답이여. 특히나 최상급 술로 준비해 왔으니 실망하지는 않을 거여.”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등을 돌려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누운 채로 계속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침묵. 그런 침묵을 깨고, 마미조가 말했다.
“그만 화 좀 풀어. 내가 미안혀…”
“…”
“정말 미안하다니께…”
“…”
“정말정말 미안하다니께…”
“...”
“정말정말정말…”
“뭐가요?”
나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고 누운 채로 말했다.
“뭐가 미안한지는 나도 모르제. 도통 말해주질 않으니.”
나는 밖에서 돌아온 이후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무슨 일을 겪었었는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다만 마미조는 결계 앞에서 돌아오지 않는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당시 그 녀석 품에 안겨 눈물 콧물 범벅인 나를 보고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만 눈치채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한동안의 침묵… 다만, 이번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거기서 어떻게 버티셨어요?”
“음?”
마미조는 의문을 품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를 눈치챈 듯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아… 설마 겨우 잠깐 사이에 그 기분을 느낀 겐가. 하루도 안 돼서 그럴 줄은 몰랐는디.”
마미조는 몇 번 뜸을 들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도 이해혀. 그쪽은 영 요괴들이 살만한 곳은 아니제. 다들 요괴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있으니께. 그나마 우리들은 인간들과 비슷하니 바깥 세계에서도 어느 정도 적응은 할 만한겨. 우리들은 변신이 특기니께.”
마미조는 다시 몇 번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그래서… 그 도교의 인간이 도와준 건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일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었다. 우리가 서로 엇갈리고 난 후에도 후토는 먼저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나를 찾아다녔었다고. 그 덕에 나는 이렇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 후토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영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고맙고 미안하고, 그리고 어이없었다.
후토가 나를 찾아다녔을 때의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아무래도 나를 찾아 다닐 때 근처의 요괴 한 명을 찾고 있다고 말하며 다녔던 모양이다. 바깥 세계의 인간들을 붙잡고 요괴가 어딨냐고 물었었다니. 그러니 당연히 한참을 못 찾았겠지. 모두에게 보이고 있어도, 진짜 정체는 아무도 몰랐으니까.
“주먹밥이라도 여기 놔두고 갈테니께 금방 기운 차리고 일어나드라고. 뭐라도 먹어야 기운이 나는겨.”
마미조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옆에 그릇 하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후 마미조는 금방 자리를 일어나 떠났다. 마미조의 또각거리는 나막신 소리가 사라지고 난 뒤, 또다시 고요한 침묵만이 남았다.
나는 몸을 빙글 돌려 마미조가 앉아있던 자리를 보았다. 마미조의 주머니에서 흘러내렸는지 무언가 마루에 떨어져 있었다. 마미조의 얼굴 사진이 걸려 있는 신분증이라는 이름의 작은 카드. 하지만 그 카드는 펑 하는 연기와 함께 금세 나뭇잎으로 변해버렸다.
변신이 특기… 그 말대로였다. 내가 바깥 세계에서 봤던 사람들은 원래의 모습대로 살지 않았다. 너구리들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모두들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남들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착하고 친절한 모습, 누군가에겐 강한 척하는 모습, 누군가에겐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을 감추는 모습, 누군가에겐 미움받는 요괴, 또 누군가에겐 평범한 인간. 바깥 세계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게 가장 무서웠다. 누구 하나에게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이. 모두들 남들 눈에 휘둘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고 살아간단 사실이.
밖에서,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런 거 없이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의 눈치와 그에 맞춰 변화하는 모습 없이, 남들이 날 어떻게 보든, 내 존재를 알고 찾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때 정말로 나타났었다. 불길 속을 뚫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도 나를 찾으러 와준 사람 한 명이.
나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릇 안에 마미조가 남기고 간 주먹밥을 한입에 전부 쑤셔넣었다.
할 일이 생겼다. 우선은 그 녀석을 만나러 가 볼 것이다. 가서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만나고 싶다. 네가 먼저 나를 찾으러 와줬으니까. 아직 못다 한 말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리고, 만약 네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실종되는 날이 온다면… 그땐 내가 너를 찾아주고 싶으니까.